박근혜 대통령이 12일 “당분간 개각은 없다”고 선언한 건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이 부산과 서울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여권 전체가 동요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8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내년 4월 총선에서 대구 지역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TK 물갈이론’은 정설로 굳어졌다.
이후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물갈이론에 군불을 지피면서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진박(진짜 친박) 후보 선별’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와중에 ‘장관 차출’과 개각을 단행하면 노동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야 간 ‘입법전쟁’의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권에선 박 대통령의 ‘개각설 조기 진화’가 박 대통령 특유의 ‘히트 앤드 런(Hit and Run·치고 달리기)’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 장관의 차출로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사람들’의 TK 공략은 더 이상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TK 물갈이론에 ‘박심’이 실려 있음을 충분히 알린 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권에선 ‘진실한 사람들=친박 인사’라는 데 이견이 없다. 박 대통령에겐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누구도 반기를 들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내부단속’을 통해 당청 관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개각설 조기 진화’는 국민과 새누리당에 자신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한 박 대통령이 ‘물갈이론’ 정국을 다시 ‘입법전쟁’ 국면으로 돌리려는 포석인 셈이다.
‘1차 TK 물갈이론’이 불거졌을 때도 박 대통령의 행보는 비슷했다. 박 대통령은 9월 7일 대구 방문 시 지역구 현역 의원을 한 명도 부르지 않아 ‘TK 물갈이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심번호 활용 국민공천제’ 도입에 잠정합의하자 청와대는 즉각 공개 비판했다.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공천제를 거부함으로써 물갈이론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안종범 경제수석비서관과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TK 출신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를 조기 정리함으로써 물갈이론 확산을 단박에 차단했다.
일각에선 ‘개각설 진화’가 김무성 대표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관측도 있다. 김 대표 측은 물갈이론 확산에 총대를 멘 일부 친박계 인사들이 박 대통령의 ‘총선 심판론’에 기대 호가호위한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가 출마가 예상된 TK 출신 참모들의 조기 정리다. 이번에도 개각설 진화는 박 대통령이 친박계와 반드시 생각이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 대신 김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에는 ‘입법 숙제’가 떨어졌다.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들’ 발언에 앞서 19대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법안 9개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의 ‘히트 앤드 런’ 전략은 결국 ‘여당 길들이기’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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