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성호]공권력이 짓밟힌 날, 정부도 여야도 원로도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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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해방구’ 된 광화문]

고성호·정치부
고성호·정치부
역시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14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선 난데없는 쇠파이프와 횃불이 등장했고, 경찰은 물대포로 맞섰다. 21세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 ‘대화와 절제’가 실종됐고 ‘폭력’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서울시청 및 광화문 일대는 외국인 관광객이 꼭 찾는 단골 명소다. 더욱이 이날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첫 수시 논술고사가 치러졌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한 장면이었다.

시위대가 내건 명분은 ‘노동개악 중단’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등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추진 과제를 반대하기 위한 자리로 ‘아수라장’이 예고된 셈이다. 하지만 ‘갈등 조정자’는 없었다. 여야는 사실상 뒷짐만 진 채 수수방관했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 불발의 책임론을 두고 ‘네 탓 공방’에 바빴을 뿐이다.

노동개혁은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지만 연일 목청만 높일 뿐 협상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국민 손으로 뽑은 국회가 사회통합 기능을 상실하다 보니 사회적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혼란을 가져오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집회 전날 담화문을 통해 불법행위 엄정 대응 방침 등을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밀린 숙제를 하는 분위기를 지울 수 없다. 사전 물밑 접촉을 통해 불법 폭력 시위를 막으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주무 장관들이 당당히 설득하고 호소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뒤에서 엄포만 놓는 듯하다. 사회 원로들의 역할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과 폭력은 안 된다”며 건전한 상식에 호소하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하는 헌법적 가치다. 하지만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불법 폭력 집회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 중재에 나서야 할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여야를 떠나 할 말은 하되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국회의 대국민 신뢰지수는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성호·정치부 sungho@donga.com
#광화문#시위#폭력#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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