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설탕과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호떡은 호빵, 어묵 등과 함께 겨울철 인기 간식으로 꼽힌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호떡을 사 먹거나 집에서 호떡 믹스로 직접 만들어 먹곤 하지만 ‘겉은 반죽 튀김, 속은 설탕’이라는 호떡의 공식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최근 인천의 전통시장인 석바위 시장에는 호떡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청년 사장이 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다양한 호떡을 만들고 있는 호풍울(호떡 풍월을 울리다)의 사장 김정수 씨(29)를 만나봤다.
○ 피자 호떡부터 아이스크림 호떡까지
13일 방문한 김 씨의 가게는 인테리어부터 기존 호떡집과는 다른 느낌을 풍겼다. 흰 톤으로 벽과 간판의 전체적인 색상을 잡고 전통 한지를 바른 갓등 두 개를 걸어 놓아 호떡집이라기보다는 전통 찻집이나 수공예품 가게 같은 모습이었다. 그곳에 서서 호떡을 굽고 있는 김 씨는 머리 두건에 입가리개까지 착용하고 있어 일식집에서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 같은 모습이었다. 김 씨는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철칙을 보여주는 답이었다.
이곳에서는 주인이 직접 돈을 받고 거슬러주는 일이 없다. 손님이 직접 선반 위에 놓인 바구니에 돈을 놓은 뒤 잔돈을 가져가야 한다. 손님으로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김 씨는 “이것도 위생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호떡을 조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름도 맑은 색을 띠고 있었다. 매일 깨끗한 콩기름(식용유)으로 교체한다는 김 씨는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기름의 온도를 확인하고 호떡 제조 시 생기는 약간의 부산물도 체로 일일이 거둬내는 등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김 씨의 호떡 가게에서는 총 4종류의 호떡과 핫초코, 슬러시를 팔고 있다. 그중 기본이 되는 씨나라 호떡은 이 가게의 베스트셀러다. 김 씨는 “부산의 씨앗 호떡과 비슷하지만 마가린으로 튀기는 씨앗 호떡과 달리 이곳의 씨나라 호떡은 식용유로 만들기 때문에 훨씬 건강한 식품”이라고 설명했다. 씨나라 호떡에는 볶은 땅콩, 해바라기씨, 호박씨, 아몬드를 넣어 쫄깃한 기존의 호떡 맛에다 견과류 특유의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이곳의 대표 품목은 씨나라 호떡뿐만이 아니다. 김 씨가 직접 개발한 피자 호떡과 빙나라 호떡도 인기가 많다. 피자 호떡은 쫄깃한 호떡 반죽 안에 피자 치즈와 햄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피자 호떡을 먹을 때 진짜 피자처럼 치즈가 길게 늘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 씨는 “기존의 피자빵처럼 케첩만 들어있는 것이 싫어서 진짜 피자처럼 치즈와 각종 재료를 넣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뜨거운 호떡 안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빙나라 호떡도 호풍울을 대표하는 메뉴다. 창업 전 전국의 유명 호떡집을 찾아다닌 김 씨는 아이스크림 호떡을 먹고 그 맛에 반했지만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뜨거운 호떡 반죽을 만나 금방 녹아버리는 바람에 불편했던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김 씨 표 빙나라 호떡이다. 김 씨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찹쌀떡 안에 넣은 뒤 호떡의 속재료로 사용했다. 그 결과 아이스크림은 호떡을 먹는 동안 녹지 않았고 아이스크림을 감싸고 있는 찹쌀떡의 쫄깃함은 호떡 반죽과 만나 더욱 차지게 느껴졌다.
○ 나는 호떡 사장이 아닌 호떡 연구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까지 건축 시공회사에서 근무한 김 씨가 갑자기 호떡 장사를 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먹었던 따뜻한 호떡의 기억 때문이다. 4년간 일한 회사에서 자신의 창의성과 장점을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과감히 회사를 나와 다른 일을 찾아보다가 과거의 기억으로 호떡에 꽂히게 됐다. 또 호떡을 팔면서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도 그를 호떡의 길로 인도했다.
회사를 나오고 호떡을 처음 만들어 보며 여러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습득하면서 반년 만에 김 씨 표 호떡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천 출신인 그는 인천 내 여러 가게 자리를 알아보다 2월 자릿세와 유동인구가 적당한 석바위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자릿세까지 포함해 250만 원이 채 들지 않은 소자본 창업이었다. 호풍울만의 호떡과 김 씨의 친절함으로 어느새 이곳은 현재 평일 최대 200개, 주말 최대 250개 정도를 판매하는 석바위 시장의 대표 호떡집이 됐다.
가게를 차린 지 1년이 다 돼가는 김 씨는 아직까지 호떡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호떡 만드는 과정이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재료 선택에서부터 반죽을 만드는 일까지 여느 음식 못지않게 손이 많이 들고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의 포부는 호떡계의 영원한 연구가가 되는 것이다. 가게 한편에 놓여 있는 그의 명함에는 자신의 직책을 ‘사장’이 아니라 ‘연구가’로 적어 놓았다. 경영자의 입장이 아니라 평생 호떡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생각에서다.
“호떡은 제가 처음 열정을 갖고 만드는 자식 같은 음식입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호떡 맛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꿈입니다.” ▼ 부활하는 석바위시장 짭조름한 구이김… 국산콩 두부… ‘MADE IN 석바위’ 날개 ▼
올해로 40년이 된 인천 남구 석바위 시장은 최근 젊은 주부들이 찾으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석바위 시장은 생활필수품에서 청과물, 수산물, 육류, 의류, 가공품 등 다양한 상품이 구비돼 있는 종합시장이다. 특히 시장 정문에서부터 마지막 점포까지 길이 500m의 일직선 길 위에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어 비가 오거나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편안히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점포 246개에서 다양한 상품을 파는 이 시장의 ‘킬러 상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시장의 명물 즉석구이김은 손님이 몰리는 날에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적당히 짭조름한 맛에 알맞게 구워진 질감 때문에 재구매율이 매우 높다. 김 포장지에도 ‘석바위 시장’이라는 문구를 넣어 ‘메이드 인 석바위’임을 강조했다. 닭만을 전문으로 싸게 파는 상점들도 눈에 띈다. 신선한 생닭뿐 아니라 닭강정, 프라이드치킨도 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가게에서 직접 두부를 제조해 파는 상점도 있다. 특히 이곳은 국산 콩을 사용해 두부를 제조하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이 상인회의 설명이다.
최근 30, 40대 젊은 주부들이 석바위 시장을 많이 찾는 것은 쇼핑이 편리할 뿐 아니라 신선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상점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 달에 3차례 정도 각 점포가 돌아가며 자체 할인 행사를 갖기도 한다. 또 석바위 시장 주변에는 아파트만 8000채가 자리 잡고 있는 등 주택가도 멀지 않아 고객층도 상당히 두껍다.
석바위 시장은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소비자 구매 방식이 바뀌고 새롭게 개발된 인천 남동구와 연수구 및 송도 등 신도시로 인구가 이동해 상권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석바위 시장은 2005년부터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남구와 석바위 시장 상점가 진흥 사업 협동조합이 ‘인천 석바위 시장 환경 개선 사업 시행에 따른 협약식’을 체결하고 시장의 체질 개선을 시작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상인들의 뚝심이 이때 빛을 봤다. 질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소식에 젊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시장을 찾는 인구도 자연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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