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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주제는 ‘공공 에티켓’]<219>불청객 출입 그만
조선시대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서울 종로구 사직단(社稷壇). 역사 유적시설인 이곳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는 올해 9월 23일부터 매일 일몰 시간에 맞춰 시민의 접근을 차단하는 줄이 쳐지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각종 운동시설을 갖춘 사직공원도 있어 가족 단위 시민에게 인기를 끌었던 놀이터에 이런 줄이 쳐진 이유는 뭘까.
기자가 찾아간 13일 저녁에도 사직단 놀이터는 역시나 일반 시민의 접근이 불가능했다. 시설을 관리하는 종묘관리소 사직단출장소 측은 ‘야간(일몰 후)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어린이 놀이터 경내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안전 문제 운운했지만 실상은 놀이터를 찾아오는 각종 불청객 때문이라는 게 출장소 측 설명이다. 이원재 출장소장은 “놀이터에 안전매트를 설치한 이후에 노숙자, 불량 청소년이 하나둘 늘기 시작하더니 무리 지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의 행동으로 공원 방문객의 인상을 찌푸리게 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놀이터 곳곳에 불청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미끄럼틀에는 담뱃불 때문에 구멍이 뚫린 곳이 있었다. 놀이터를 찾은 한 아이는 그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놀이기구에는 ‘○○ ♥ △△’ 식의 낙서도 여러 개 발견됐다. 한 30대 여성 학부모는 “사람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원통 모양 시설에서 남녀 커플이 과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놀이터도 상황은 비슷했다. 15일 저녁 서울 강서구 주택가의 한 놀이터에서는 ‘금연·금주 공원’이라는 안내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공원 입구, 벤치 아래 등 곳곳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공원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사 와 한바탕 술판을 벌이는 무리도 있었다. 종로구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그네 옆에는 ‘청소년과 어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니 타지 말아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어린이를 위해 설계된 놀이시설이 ‘나 하나쯤’ 하는 이기심 때문에 멍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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