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나와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10일 당시 DJ가 입원 중이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의 애증(愛憎)이 얽힌 오랜 인연을 압축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자 YS는 “그렇게 봐도 좋다”고 말했다. 8일 후 DJ는 세상을 떠났다. YS와 DJ는 ‘민주화 동지’였지만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YS는 민주당 ‘구파’, DJ는 민주당 ‘신파’의 기대주로 출발했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경선에서 처음 맞붙어 YS가 승리를 차지했다. 2년 뒤 대선후보 경선에서 YS는 ‘40대 기수론’을 처음 내걸었지만 후보 자리는 DJ가 차지했다.
YS와 DJ는 1987년과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격돌했다. 1987년 대선에선 두 사람의 분열에 힘입어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1992년 대선에서 YS가 승리하고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5년 뒤 대선에서 DJ는 4수 끝에 당선했다. 당시 YS가 여당의 DJ 비자금 검찰 수사 요구를 일축한 것이 DJ 당선의 한 요인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YS, DJ를 모두 취재한 언론인 출신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이같이 평가했다. “DJ에게 YS를 평해 보라니까 DJ는 ‘그는 어려운 일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말해’라고 했다. YS에게 DJ를 평해 보라고 하니까 ‘그는 쉬운 일도 괜히 어렵게만 말해’라고 답했다.” 이제 양김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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