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불거진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 직접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사진)은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YS가 당시 미국 의회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며 “뉴트 깅리치 당시 하원의장과 내가 대만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미국 의회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만이 수출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1997년 1월 대만 에너지회사인 타이파워(Taipower)는 방사성폐기물 20만 배럴(3178만 L)을 북한에 보낸다고 발표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당시 스티븐 보즈워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사가 “핵폐기물 이전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와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한국 외교부,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나설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청와대로 찾아온 김 전 의원에게 YS는 거듭 “도와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연방의원 신분에 해가 되지 않겠느냐”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전 의원이 ‘모국’인 한국을 돕기 위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전 의원은 당시 청와대 방문이나 김 대통령과의 대화 모두에 대해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YS는 그 약속을 서거할 때까지 지켰다.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이던 김 전 의원이 깅리치 당시 하원의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문서로 써 달라’는 답변이 왔다. 김 전 의원은 △운반 도중 사고 발생 위험 △전례 없는 핵폐기물 수출 △매몰 후 방사성물질 유출 시 주한미군 피해 우려라는 3가지 논리로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했다. 이윽고 깅리치 의장과 함께 대만을 찾아가 리덩후이(李登輝) 당시 총통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완벽한 밀폐 저장 용기로 유출 우려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북한에 돈을 주고 처분을 맡기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설명도 뒤따랐다. 대만의 차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미국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맡게 됐는데 자칫하면 수주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은근한 위협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의원은 같은 해 6월 미국 하원에서 ‘대만은 북한에 핵폐기물을 이전하지 말라’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12월 대만은 ‘북한에 핵폐기물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의원이 YS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충북 옥천에서 먼 친척의 천거로 YS 지원 유세를 하면서부터였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995년 6월 미국을 방문할 때 김 전 의원은 직접 관여해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성사시켰다. 생전 고인과의 만남은 YS가 병상에 있던 지난해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가장 존경하던 대통령이지만 환자가 불편해할까 봐 찾아뵙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며 “23일 영정을 봤을 때도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