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확실히 꽃피우라는 유훈 받들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3시 00분


[김영삼 前대통령 26일 영결식]
‘민주화의 巨山’을 보내며… 동고동락 정치권 인사들의 헌사

현철씨 위로하는 노재헌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왼쪽)가 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철씨 위로하는 노재헌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왼쪽)가 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대한민국 민주화의 ‘거산(巨山)’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4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사를 풍미한 지도자였다. YS와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상도동계’와 김영삼 정부 고위인사,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들이 YS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는 ‘헌사(獻辭)’를 보내왔다.(가나다순) 》


▼ 빈소 찾은 전두환… ‘화해 맞느냐’ 질문에 침묵 ▼

5共때 충돌… YS 집권뒤 구속 악연
현철씨에 “나이 많으면 다 가는것”… 노태우 前대통령 아들도 조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가 빛을 발한 것일까. YS와 ‘악연(惡緣)’으로 얽힌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서울대병원 빈소를 전격적으로 찾았다.

이날 오후 4시 빈소에 도착한 전 전 대통령은 정장 차림에 건강한 모습이었다. 오전까지도 별도의 방문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오후 3시쯤 비서진에게 “영결식에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오늘 가자”며 조문을 결정했다고 한다. 부인 이순자 씨는 동행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만 적었다. 이어 분향소로 이동해 YS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차남 현철 씨의 손을 잡고 “애 많이 썼다. 나이가 많고 하면 다 가게 돼 있다”며 위로했다.

그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김 전 대통령의 나이를 물은 뒤 “나하고 4년 차이 났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생, 전 전 대통령은 1931년생이다.

다음은 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나눈 대화 내용.

전두환 前대통령 “고인의 명복 기원”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이 25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국화꽃을 들고 애도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자신을 구속시켰던 YS와 소원한
 관계였으나 이례적으로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두환 前대통령 “고인의 명복 기원”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이 25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국화꽃을 들고 애도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자신을 구속시켰던 YS와 소원한 관계였으나 이례적으로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 전 대통령=100세 시대면 뭐해요. 건강하게 살다가 떠나는 게 본인 위해서 좋고 가족들 위해서도 좋고…. 자다가 싹 가버리면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지.

▽김현철 씨=건강 괜찮으세요?

▽전 전 대통령=나이가 있으니까 왔다 갔다 하지.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을 거야. 술은 맛을 몰라요, 나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우리 대통령(전 전 대통령)은 굉장히 장수하실 거야.

▽전 전 대통령=아주 친한 사람은 내가 술 안 먹는 걸 아는데 보통 사람들은 내가 술 잘하는지 알아. 내가 군에 있을 때 작전하고 나면 한 서너 잔을 착 마시고 하니까. 어떤 술이든 석 잔 먹고는 도망가지.

전 전 대통령은 10분간 빈소에 머문 뒤 “먼저 실례하겠다”며 일어섰다. 전 전 대통령은 ‘이번 조문이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YS와 전 전 대통령은 악연의 연속이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던 YS를 가택연금했다. 이후 YS는 정권을 잡은 뒤 5·18특별법을 제정해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시켰다. 앙금은 이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을 모두 초대한 만찬에서 YS가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대이”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 씨(변호사)도 이날 전 전 대통령에 앞서 빈소를 찾았다. 재헌 씨는 분향한 뒤 자리를 뜨려 했지만 유가족이 차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해 7분 정도 빈소에 머물렀다. 재헌 씨는 “아버지가 ‘거동이 힘드니 (대신)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는 뜻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YS는) 한때 아버지와 국정을 같이 운영했고 대통령도 됐기에 당연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YS의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된 전 전 대통령은 영결식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도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의 뜻을 전했다.

‘YS 키즈’를 자처하며 나흘간 빈소를 지킨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덕룡 전 의원, 김기수 비서실장은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김 전 의원은 “YS의 업적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부족했는데 서거 이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길호 kilo@donga.com·길진균 기자
#김영삼#영결식#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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