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국가장 5일은 ‘통합’과 ‘화합’의 시간이었다. YS와 평생을 함께했던 사람도, 그와 얼굴을 붉히며 싸웠던 사람도, 그를 가뒀던 사람까지도 서로 손을 잡았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서로의 추억을 회상했고, 경쟁했던 사람들은 구원(舊怨)을 털려고 했다. 5일 동안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직접 지켜본 모습이었다.
○ YS 서거, 분열된 정치권을 하나로 묶다
5일간 YS 빈소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축소판’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빈소에 모여 한목소리로 그를 애도했다.
YS가 마지막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는 울림이 컸다. 이 화두는 갈등과 반목에 빠진 여야 정치권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다. YS의 핵심 측근이었던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YS가 전한 통합과 화합은 지금 꼭 필요한 말씀”이라며 “그분의 진심이 국민에게 전해질 날이 와야 한다. 그런 정치가 다시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YS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도 YS의 서거를 계기로 굳건히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공동 상주’ 역할을 맡았다. 상도동계 김덕룡 전 의원과 동교동계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은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함께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빈소에서만큼은 계파도 정적도 없었다.
○ 전직 대통령들과의 악연을 끊다
YS와 불편한 관계였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서로 화해의 끈을 잡았다. 전 전 대통령은 25일 YS의 빈소를 예고 없이 찾았다.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쓴 뒤 차남 현철 씨 등 유족을 위로했다. 그동안 YS와 불편했던 과거를 정리하는 메시지였다.
거동이 불편해 빈소를 찾기 어려웠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아들 재헌 씨(변호사)를 대신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재헌 씨는 현철 씨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했다. 이를 지켜본 조문객들은 “아버지들끼리 화해의 손을 맞잡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전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던 YS를 가택연금과 정치활동 금지로 탄압했다. YS는 대통령 재임 기간에 5·18특별법을 제정해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그러나 YS의 서거를 계기로 두 전직 대통령이 얽힌 과거의 악연을 끊은 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빈소 방문에 이어 26일 발인식에도 참석했다. 평생 박정희 정권과 각을 세워온 YS이기에 박 대통령의 조문이 갖는 의미가 남달랐다는 관측이 많았다.
○ YS의 유언, 새로운 화합 계기로
“YS가 꼭 좋아서 칼국수를 자주 먹은 건 아니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빈소를 찾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칼국수는 과거 정권의 기득권과 선을 긋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칼국수를 통한 솔선수범의 메시지는 YS의 의지였다”고 회상했다.
YS의 영정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었다.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YS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를 찾았다. 안철수 의원도 “YS가 마지막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에 대한 말씀을 가슴속에 기억하겠다”고 했다.
35년 동안 YS를 보필한 김기수 전 수행실장은 “거산(巨山·YS의 아호)은 역시 거산”이라며 “거산의 이름 아래 통합과 화합이라는 시대정신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1시 반 고인의 운구가 빈소를 떠날 때까지 이곳을 찾은 정관계 인사와 시민은 3만7000여 명이었다. YS의 빈소는 단순한 조문의 공간에 머물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대로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국회는 국민을 위한 무대로 거듭나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히는 자리였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YS는 성숙한 민주화로, 실질적 민주화로 이끌어 달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줬다”며 “지난 30여 년간 민주화에 앞장섰던 YS의 서거는 지역갈등 해소와 새로운 화합으로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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