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화전양면(和戰兩面·화합을 꾀하면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뜻)’ 카드를 또 꺼내 들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한 정황이 포착된 28일은 남북이 26일 밤 12시 당국회담 개최에 합의한 지 48시간도 안 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SLBM 발사는 유엔이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다. 다음 달 11일 남북 차관급 당국 간 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북한이 또다시 우리의 대응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北매체, 5월과 달리 관련보도 안해
군 당국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번 SLBM 사출시험을 참관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북한 노동신문은 27일 김정은이 강원 원산의 구두공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신포급(2000t급) 잠수함이 있는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와 원산은 하루 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북한 매체들은 29일까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5월 발사 당시 대대적 보도를 한 것과 달리 이번엔 실패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르면 2~3년 안에 SLBM을 전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비대칭 전력인 SLBM 실전 배치에 성공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더 은밀한 방법으로 한반도 등을 기습 타격할 수 있는 발사 수단을 갖추게 된다.
북한은 앞으로도 SLBM을 잠수함 내 발사관에서 무사히 내보내는 사출시험을 수십 차례 계속할 것으로 군 당국은 전망했다. 5월 북한이 SLBM 사출시험에 처음 성공했을 때 ‘북극성-1’이라고 적힌 모의 탄도탄은 신포 앞바다 수중에 있던 잠수함의 수직발사관에서 나와 수백 m를 날아갔다. 북한은 28일 전보다 거리와 발사각 등에서 진전된 시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개발 중인 SLBM 발사 방식은 보호캡슐이 물 밖으로 나온 뒤 깨지면서 탄두가 점화되는 ‘콜드 론칭(Cold Launching)’이다. 적의 레이더 포착을 피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작은 잠수함에서도 발사할 수 있어 위협적이다. 북한이 SLBM을 개발하면 발사관이 1개밖에 없는 현재의 신포급 잠수함보다 크고 발사관을 3개 설치할 수 있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 北 당국 회담 합의 직후 안보리 결의 위반
한국과 미국은 5월 북한의 SLBM 발사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다음 달 열리는 당국 간 회담과 관련해 “남북 대화를 하고 싶으면 SLBM 발사를 문제 삼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대화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측은 26일 남북 실무접촉에서 남측의 대북 대결 태도 때문에 남북 관계 개선이 안 된다면서 공동보도문에 ‘남북 대화 분위기 조성’ 항목을 넣자고 주장했다. SLBM 발사 비판도 “남북 관계 개선을 저촉하는 대결적 언행”으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29일 SLBM 발사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5월 발사 때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전” “북한이 도발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시한 것과는 사뭇 다른 대응이다. 대화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한 조치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남북 대화를 안 할 수 없지만 비판은 해야 하는 한국과 대화와 상관없이 무력 증강을 계속하겠다는 북한을 둘러싼 복잡한 변수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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