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LA 총격테러 충격]남편 따라 美에 온 뒤에도 니깝 입고 외부와 접촉 차단
테러단체와 연관 증거 못 찾아… 급진주의 매료된 자생적 테러 추정
범행사용 총기 구입 이웃 자취 감춰… 범행동기-폭탄 출처등에 수사 집중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 장애인 시설 총기 테러 사건의 여성 범인인 타슈핀 말리크(27)가 범행 직후 이슬람국가(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녀의 행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말리크는 파키스탄 라이야 지방의 카로르랄에산에서 유복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촌 중 한 명인 말리크 아흐마드 알리 아울라크가 지방정부 장관을 지낼 정도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집안이었다는 것. 어린 시절 말리크는 순종적인 학생이었고 공부도 잘해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그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지만 친척을 만나기 위해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 자주 갔고 펀자브 남부의 한 대학에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약학(藥學)을 공부했다. 지역에서는 신학문을 배우던 ‘모던 걸’로 통하던 그는 대학에 들어간 지 2년쯤 지났을 때부터 이슬람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다고 주변인들이 전했다. 그가 이슬람에 심취하게 된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대학 시절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비다 라니 씨는 “말리크는 2009년부터 공부보다는 종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거의 매일 수니파 급진주의에 속한 마드라사(이슬람의 교육기관)에 들를 정도로 종교 생활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말리크가 지난해 7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기 전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말리크 가족 중 한 사람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인터뷰에서 “말리크가 밤에 인터넷에서 아랍어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말리크가 얼굴에 베일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에는 베일을 쓰지 않은 자신의 얼굴 사진 찍기를 거부했고 재학생 자료에 등록된 자신의 사진까지 모두 찾아 지웠다. 학생증과 도서관 출입카드마저 모두 없앴다. 말리크는 미국에 온 뒤에는 더욱 자신을 외부와 차단시켰다. 항상 눈만 남긴 채 얼굴을 모두 가리는 니깝을 입었으며 운전도 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5일 말리크와 그의 남편 사이드 파루크 부부가 외부 테러조직과 연관됐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슬람 급진주의에 매료된 부부의 ‘자생적 테러 사건’으로 정리되고 있는 듯하지만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집에서 발견된 실탄 수천 발과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파이프 폭탄 12개의 용도는 무엇인지, 왜 직장 크리스마스 파티를 범행 시간과 장소로 택했는지 등에 대해 수사가 집중될 것이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말리크가 페이스북에 IS 충성 서약의 글을 올렸다고 하지만 IS가 직접 명령했다거나 말리크 부부가 IS에 몸담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수사 당국은 이번 총격 테러에 사용된 자동소총 4정 중 두 정이 이웃주민 엔리케 마르케스의 명의로 구매된 것을 확인했지만 현재 마르케스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한편 총 14명이 숨진 테러 현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동료를 구한 ‘영웅’도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데니스 페라사 씨는 5일 페이스북에 “동료였던 섀넌 존슨(45)의 희생으로 나는 살아남았다”며 “테이블 아래서 그는 가능한 한 가까이 자신 쪽에 붙어 있도록 왼팔로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는 ‘나의 친구, 나의 영웅’”이라는 애도의 글을 올렸다.
부상자 21명 가운데 한 명인 어맨다 가스파르 씨의 가족은 5일 성명에서 “범인들은 회의실 전체에 총을 난사한 뒤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어맨다까지 찾아내 총을 겨눴다”며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가스파르 씨는 팔다리에 총알을 맞았지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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