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정보화, 민주화가 모두 달성된 마당에 폭력 집회는 공감을 얻기 힘들어요. 앞으로는 평화적인 준법 집회가 확실히 뿌리내려야 합니다.”
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2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를 앞두고 열린 범종교인 기자회견을 보며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54·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강 원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신동아 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다. 본보 취재팀은 강 원장과 2차 민중 총궐기 집회 현장에 동행하며 바람직한 집회 시위 문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날 집회는 오후 3시경 서울광장에서 경찰 추산 1만4000여 명(주최 측 5만여 명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집회가 시작되자 조계사 스님을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이 한 손에 꽃을 들고 집회장에 들어섰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꽃으로 이날 집회가 순조롭게 끝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였다. 강 원장은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를 불러온 체코의 ‘벨벳혁명’ 당시에도 꽃을 든 시위대의 사진이 널리 회자됐다. 꽃이 등장한 게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집회에서 주최 측은 노동관련법 개악 중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농민 고사정책 중단 및 백남기 씨 부상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 다양한 요구를 내놨다. 집회장 곳곳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를 석방하라”는 정치성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등의 불법 행위는 없었다.
▼ “과격문구도 사라져야 일반시민 공감 얻을것” ▼
경찰도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자 플라자호텔 앞 도로까지 집회장소를 열어주고 경찰버스 차벽을 설치하는 않는 등 유연한 대처가 돋보였다.
본 집회가 끝나자 참가자들이 대학로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1차 총궐기처럼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없었다. 강 원장은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시위대에 자기만족을 줄지 몰라도 일반인의 공감을 얻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청와대 탓으로만 돌리는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행진은 청계천, 보신각을 거쳐 종로를 지나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까지 이어졌다. 주최 측은 300명의 질서유지단을 동원해 일부 시위자의 돌출행동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강 원장은 “과격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호나 피켓은 도리어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 다수의 반발을 살 수 있다”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좀 더 재치 있고 풍자나 해학이 담긴 표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오후 8시 40분경 시위대는 서울대병원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끝으로 해산했다. 주최 측이 신고한 집회 마감시간인 오후 9시를 넘지 않았다. 강 원장은 “오늘 집회는 작은 기적이 이뤄진 중요한 실험이었다”며 “종교단체가 대립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고 집회 주최 측도 최근 악화된 국민 여론을 수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집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이날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데 안도하면서도 현행 집회시위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강이슬 씨(26·여)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참가자들이 각자의 주장을 한꺼번에 내놓아 소란스럽기만 하고 공감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윤수 씨(29)는 “일부 요구 내용엔 동의하지만 시위대가 말하는 민중이 실제 나를 포함한 국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시위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폭력 시위가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호연 씨(30·여)는 “평화시위를 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과격해 보이고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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