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100m 가는 정책과 서쪽으로 100m 가는 정책을 섞는 정치적 거래는 안 된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만 준다.”(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 전 장관은 경제 살리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 8일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19대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 박 전 장관이 우려한 ‘정치적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는 정부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일명 원샷법)과 야당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 법안을 맞교환하고,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정부의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 법안과 야당의 사회적 경제 기본 법안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는 맞교환 움직임이 감지된다.
원샷법과 서비스업법은 경제 활성화가 목적이다. 반면 상생협력법과 사회적경제법은 경제 민주화 법안이다. 반대 성격의 법안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전진 기어와 후진 기어를 동시에 넣는 격이다. 차가 움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엔진이 망가질 수 있다.
일례로 원샷법은 공급 과잉 시장에 있는 정상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을 재편하려 할 때 기업 인수합병(M&A)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실이 터지기 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해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자는 취지다. 야당은 ‘대기업이 경영권 승계 등에 이 법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기업을 적용 대상에서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제계에서 “대기업을 빼면 쓸모없는 법이 될 것”이란 목소리를 높이는 등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여야는 원샷법과 상생협력법을 맞교환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상생협력법은 현재 민간 자율로 돼 있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법률로 강제해 대기업이 해당 업종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국제 통상 규범 위반 소지가 있다. 시장경제 흐름을 원활히 하는 원샷법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와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서비스업법과 협동조합 등을 나랏돈으로 지원하는 사회적경제법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신호를 넣는 법안이다. 경제 정책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시장의 혼란이 커진다.
“정치적 거래 없이는 경제 활성화 법안을 100m 끌고 갈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50m만 끌고 가거나 법안을 아예 추진하지 않는 게 낫다”는 박 전 장관의 고언을 여야 모두 곱씹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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