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23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더 피할 곳 없는 처지가 됐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행보에 조계종과 조계사 신도들은 ‘자비(慈悲)’를 거둬들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경찰도 조계사 경내로의 강제 진입 방침을 밝혀 한 위원장 체포는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 초긴장 상태 빠진 조계사
8일 조계사에는 하루 종일 전운이 감돌았다. 경찰은 밤사이 민주노총이 조계사로 진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기동대 11개 중대 약 900명을 조계사 주변에 비상 대기시켰다.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경찰의 체포 작전을 ‘민주노총 궤멸 시도’로 규정하고 총파업으로 맞설 기세다.
이날 오후 1시 반 조계사 신도 60여 명은 “한상균을 끌어낼 테니 경찰이 잡아가라”며 한 위원장이 은신 중인 관음전에 진입했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4층에 진입하기 위해 열쇠공까지 불렀지만 복도를 막은 철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분노한 신도들은 “한상균 나와라”라고 소리치며 철문을 발로 차고 2시간 동안 퇴거를 요구했다. 신도회 임모 씨(75·여)는 “신도가 마음을 자비롭게 가지니 한 위원장이 우리를 이용한 것밖에 안 된다”며 “내일(9일)은 꼭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계사를 비롯한 조계종도 격앙된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 약속을 어기고 사찰을 정치 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승 총무원장까지 거명하며 자신을 받아 준 조계종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는 “사찰은 나를 철저히 고립 유폐시키고 있다. 그 전술은 자본과 권력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며 “객으로 한편으론 죄송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조계사 관계자는 “도대체 제정신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갑질’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입으로는 노동자의 대의를 얘기하지만 한마디로 신의, 약속, 책임 같은 단어와는 담 쌓은 인물이다”라고 비난했다. 한 위원장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셈이다.
한 위원장의 난데없는 조계종 비난은 조계사와 화쟁위원회가 이날 새벽 한 위원장에게 조계사 퇴거 시한을 통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계사 측은 “대화 내용은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 위원장 측이 노동 관련 매체에 흘렸다”며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간 한 위원장에게 우호적이던 화쟁위도 “국민을 믿고 한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결정하여 줄 것을 희망한다”며 한 위원장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 대통령 불호령에 경찰 최후통첩
경찰은 9일 오후 4시까지 한 위원장이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 작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경찰은 조계사 주변 경비를 강화하고 검문검색을 통해 한 위원장 비호 세력의 조계사 진입을 막기로 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명 ‘한상균 호위대’로 불리는 민주노총 노조원이 한 위원장 검거를 방해하면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조계사 진입 방침에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5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은 한 위원장이 여전히 체포되지 않았다는 보고에 주무 장관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계사 경비를 위해 지난달 16일 이후 23일간 경찰관 1768명을 투입했으며 급식비와 간식비, 유류비 등으로 2억3344만 원을 썼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8일 오후 6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9일 오후 4시 민주노총 조합원이 조계사 인근에 결집해 경찰 체포를 막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마련 중이다. 9일 오후 7시엔 조계사 내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열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동체대비 법회’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한 위원장을 지지하는 ‘한 끼 동조 단식과 조계사 앞 연등 달기’ 행사도 12일까지 진행한다. 경찰은 조계사 주변에서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곧장 해산을 명령하고 이에 불응하면 가담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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