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세습하고 일감 독점… 취약계층 외면한 ‘귀족노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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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노총 20년’ 대해부]
대기업 정규직 위한 조직으로 변질

“자칫하면 묻힐 수 있는 노동 이슈를 발굴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해 왔다.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환기한 것은 ‘공(功)’이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올해 20주년을 맞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공은 결코 작지 않다. 민주노총의 성장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궤를 같이한다. 노동자들의 고충을 조직화하고 체계적으로 이슈화하면서 노동계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올려놓은 것도 민주노총의 성과다.

특히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비정규직 문제가 이만큼 공론화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를 민주노총이 처음 만들었다.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12만 명을 끌어안은 것도 민주노총이다. 불법 파견,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이슈도 끊임없이 제기해 이들의 처우도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박지순 교수는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 문제를 거론하면서 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힌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 청년, 비정규직에게 외면받는 노조

그러나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발목이 잡혀 비정규직을 외면해 왔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올해 8월 민주노총은 간부 463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민주노조 운동 과제의 실현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는 1.94점(5점 만점)으로 최하위였다. 민주노총 스스로도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상시·지속적 업무는 무조건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민주노총을 청년들도 외면한다. 앞으로 10년간 약 25만 명의 조합원이 퇴직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규직 일자리가 하늘의 별 따기인 청년들이 얼마나 들어올지는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여기에 기존 조합원들이 나이가 들면서 조직 자체가 고령화되고 있다. 양대 노총을 모두 거부하는 ‘제3지대’(상급단체 미가맹 노조)도 급속히 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소속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난해 평균 월급은 424만 원으로 근로소득 상위 10%(535만 원)의 80% 수준이었고, 전체 근로자 평균(341만 원·100인 이상 사업장)보다도 83만 원이 많았다. 특히 전체 임금근로자(100인 미만도 포함)의 평균 연봉은 3240만 원(월 평균 270만 원)에 그쳤지만 현대차는 9700만 원(월 평균 808만 원), 공무원은 5600만 원(월 평균 466만 원)이었다.

여기에 조합원 자녀를 특채시키는 ‘고용 세습’과 특정 노조가 일감까지 독점하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청년을 대변하기란 어렵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대기업의 근로조건과 임금 보호에 집중하다 보니 미조직 노동자나 중소기업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며 “특히 비정규직 등 조직화의 사각지대에 무관심했고, (청년 등) 취약근로계층을 위한 조직화에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정파 갈등 넘어 청년, 비정규직 속으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청년들을 대변하지 못한 것은 뿌리 깊은 정파 갈등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노총은 크게 △국민파(NL·민족민주) △중앙파(PD·민중민주) △현장파(PD) 등 3개 정파가 있다. 가장 ‘오른쪽’에 속하는 국민파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권영길 전 위원장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단병호 전 위원장 등이 속했던 중앙파는 ‘중도’로 볼 수 있다. 반면 한상균 현 위원장이 속한 현장파는 민주노총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정파로, 총파업 등 전투적 노동운동을 추구한다.

이런 정파 갈등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두고 1980년대 진보 진영에서 벌어졌던 ‘사회구성체 논쟁’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고통이 현실화된 상황에서도 정파 갈등이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는 것. 이런 흐름에서는 조직의 협상력과 영향력을 높일 전략을 고민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제 민주노총이 ‘성인’다운 책임감과 개혁성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과 청년을 더욱더 대변하고, ‘내셔널센터’(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로서의 역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정파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헤게모니 싸움으로 변질된 것은 문제”라며 “정파 스스로 성찰을 하고, 정파 간 연합도 시도하는 등 ‘노조 정치’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민주노총을 끊임없이 설득해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규식 노사정위 수석전문위원은 “헌법에 의해 단결권을 가진 민주노총을 악마로 몰고 깨부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립시킨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정부도 대화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ryu@donga.com·임현석 기자
#고용#독점#귀족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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