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집주인과의 약속 세번 어긴 한상균, 甲 중의 甲”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1일 03시 00분


[한상균 24일만에 체포]조계사 관음전에서의 행적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의 관음전은 평소 기도처이자 템플스테이 숙소로 활용되는 조용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이곳에 은신한 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10일 한 위원장이 체포된 뒤 관음전은 청소 등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만약에 있을 충돌에 대비해 구름다리를 감시하던 옥상 조명은 오후 2시경 철거됐다. 한 위원장이 체포된 직후인 오전 11시 40분경에는 매일노동뉴스 등 신문이 담긴 쓰레기 포대가 관음전에서 나왔다.

○ “집주인 말도 안 듣는 갑 중의 갑”


이날 오전 10시 7분경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 등이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에 앞서 관음전을 찾았다. 퇴거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심각했던 이전과 달리 차분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전날 자진 퇴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심각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향후 계획과 건강에 대한 덕담이 오갔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인 9일 오후 관음전은 같은 호남 출신인 담화 스님과 한 위원장 사이에 전라도 사투리로 고성이 오가는 등 격앙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 4시경 관음전 밖에서는 공권력 집행에 나선 경찰과 이를 막는 종무원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시각 담화 스님은 한 위원장을 설득하다 지쳐 “한 사람 때문에 조계사는 물론이고 종단 전체가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압박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나는) 2000만 노동자의 대표자이니 함부로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도법 스님이 두 사람을 자제시키며 대화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자진 퇴거 시점과 관련해 한 위원장이 거듭 말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본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집 주인인 조계사와의 약속을 3차례나 어긴 한 위원장이 ‘갑 중의 갑’이라며 “(나가기로 약속한) 10일 새벽에도 혹시 마음을 바꿀까 봐 불안해 옆방에서 잤다”고 했다.

○ “휴대전화는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

조계사로 들어간 직후 관음전 409호에서 생활하던 한 위원장은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루 앞둔 4일 밤 407호로 방을 옮겼다. 그가 창문을 통해 민노총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본 사찰 측에서 조계사 대웅전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창문이 난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의 은신 뒤 관음전은 철저히 통제됐다. 건물 내 엘리베이터 사용이 중지됐고, 출입문도 모두 자물쇠로 잠겼다. 직원들 몇 명은 주간에는 외부에서 열어줘야 출입이 가능했고 야간에는 외부와의 출입이 차단됐다. 한 사찰 관계자는 “출입이 번거로워 안에서 직원들이 컵라면을 먹곤 했는데 그걸 두고 (단식 중이던) 한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컵라면 고문’이라고 썼다”고 했다.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언론과의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됐다. 종단이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 이번 사안을 조계사와 화쟁위원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태라도 전화를 꺼놓으면 안 되고 기자들 전화를 받아라.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는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의 당부까지 있었다.

한 위원장은 은신 초기에는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며 온라인을 통해 투쟁 지침과 서신을 전했다. 하지만 이에 부담을 느낀 사찰 측이 “여기에 피신해 온 것이지 투쟁 지휘소를 설치하러 온 게 아니지 않느냐”며 노트북을 치워 달라고 요청해 한 위원장은 나중에는 스마트폰만 사용했다.

4층을 지키던 조계사 직원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한 위원장은 방에서 조용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거나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민노총 관계자들이 챙겨 가서 따로 빨래를 해줬다.

한 위원장은 단식 전에는 김치찌개 등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또 은신 초기에는 4층 복도나 옥상을 자주 드나들고 야간에는 민노총 관계자들도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김갑식 dunanworld@donga.com·김민 기자
#한상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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