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 한명숙과 문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진실과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한 참담한 결과입니다. 정치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무죄입니다.” 8월 20일 대법원이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의원(이하 한명숙)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렸을 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밝힌 공식 반응이다.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로 유죄 판결을 했는데도 변호사 출신인 문 대표는 마치 한명숙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한명숙은 장관에다 총리까지 지냈다. 그런 사람이 총리 재임 시절에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데도 제1야당은 그를 서울시장 후보로 옹립하고 당대표로도 선출했다. 그것만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새정치연합은 대법원 최종 판결마저 깔아뭉갰다. 문 대표는 심지어 대법원에 재심 청구가 가능한지, 추징금 8억8000만 원을 대신 내주게 당 차원의 모금이 가능한지 검토해보라고 당에 지시까지 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언론에 대고 ‘재심 청구’ 운운했다. 보통의 법 상식과는 동떨어진 언행이다.

▷그랬던 문 대표가 한명숙에게 자진 탈당을 요청했다고 당 대변인이 그제 밝혔다. “결백을 믿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 정치적인 거취를 결단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혁신을 위해 내치겠다는 결기가 아니다. ‘혁신 쇼’를 해보려는데 장단 좀 맞춰달라는 간청으로밖에 안 보인다. 한명숙은 친노(친노무현)의 상징이다. 폐족(廢族) 신세이던 친노를 정치적으로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런 한명숙에 대한 문 대표의 애틋함이 절절이 느껴진다.

▷문 대표의 제스처는 안철수 의원의 혁신안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해 그의 탈당을 막으려는 것이란 해석이 있다. 반대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비노(비노무현)-비주류를 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란 추측도 나온다. 너무 속 들여다보이는 쇼라 재미도, 감동도 없다는 점이 아쉽다. 문 대표가 혁신의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면 한명숙을 옹호했던 발언을 사과하고 탈당 요청이 아니라 제명의 칼을 빼들었어야 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한명숙#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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