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 탈당 사태를 맞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5일까지 이틀간 당무를 중단한 채 어제 부산 영도에 사는 모친을 방문하러 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 테러방지법 등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처리키로 합의한 법안은 심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러다간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던 노동개혁 5법은 어느 세월에 심의가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고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사퇴해버려 제1야당은 지도부 공백상태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법안 처리 방향을 당 지도부 누구와 상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손을 놓고 있다.
어제 새누리당 긴급의원총회에서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 현재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라고 규정하면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본연의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총에서는 직권상정에 난색을 표하는 정 의장에 대해 “해임건의안 제출” “의장실 점거”와 같은 강경한 주장이 쏟아졌다. 국회선진화법에는 의장이 법안을 직권으로 상정·처리할 수 있는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국한한다.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국회가 사실상 입법 마비상태라는 점에서는 직권상정론이 나올 만하다.
15일부터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데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선거구 개편도 시급한 현안이다. 신인 등 원외 후보들은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은 탓에 깜깜이 활동을 해야 하는 반면 현역의원들은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출마 예정자들에게 공평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현역의원들의 기득권 담합행위다. 31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기존 선거구 전체가 무효가 되고 예비후보들은 후보 자격을 상실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다. 정 의장은 15일 선거구획정위에서 마련한 복수의 획정안을 직권상정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가 경제활성화 법안과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법안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내부 문제에만 매몰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지금은 경제위기가 곧 닥칠 듯한 엄혹한 상황이다. 시급한 법안 처리가 무한정 불가능하다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 의장이 그동안 여야 협의에 의한 국회운영을 존중하고 헌법과 국회법 원칙의 준수를 강조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금은 야당의 리더십 붕괴로 입법 비상상황이다. 정 의장이 법적으로 안 된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소신 있게 먼저 비상한 조치를 취하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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