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경제 관련 장관회의에서 ‘정치권’을 질타했다. “국민이 바라는 일을 제쳐 두고 무슨 정치개혁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정치개혁을 먼 데서 찾지 말고 가까이 바로 국민을 위한 자리에서 찾고 국민을 위한 소신과 신념으로 찾아가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간접화법’이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간접 비판은 지난달 이후 모두 6차례나 됐다. 하지만 ‘어떻게 하라’는 지시만 있고 당사자에게 직접 ‘어떻게 하자’라는 적극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대통령이 직접 소통 나서야
청와대가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2개 법안 등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달라고 촉구할 때도 박 대통령은 나서지 않았다. 대신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정 의장에게 “국민이 원하는 법을 먼저 처리한 뒤 선거법을 처리하는 순서로 해 달라”며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수석들만 바쁘게 움직일 뿐 정작 리더(박 대통령)는 거리를 두고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통령이 직접 움직였다면 국회의장도 야당을 설득할 명분이 생겼을 것이다”라며 “대통령이 정치적인 노력을 보여줘야 여론이 공감하고 그러면 국회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났고, 국회를 매년 찾아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며 소통 부재라는 지적을 반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만나 봐야 결과가 뻔한 만남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성과가 있는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평소 자주 만나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물꼬가 터질 수 있다”며 ‘스킨십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발언의 간결함도 사라졌다
박 대통령은 옛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말이 적었다. 그리고 간결했다. 박 대통령의 절제된 발언은 ‘메시지의 힘’을 보여줬다. ‘평소 말이 적은 이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박 대통령의 발언은 간결한 단어로 일침을 가했던 이전 ‘화법’과는 달라졌다.
6월에 새누리당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렸을 땐 모두발언 5864자 가운데 4461자(76%)가 정치권 성토에 할애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절절한 심정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 폭탄이 일상화하면서 ‘메시지 거부’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직접 소통 현장에 나서기보다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이 반복되면서 “국회와 국무위원에게 호통만 친다”는 불만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16일 경제 관련 장관회의에서도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조를 인용해 쟁점 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각종 회의 모두발언은 평균 15분 안팎이고, 30분 가까이 될 때도 있다. 표현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 “볼모로 잡고 있다” 등 강경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임기 내에 뭔가 해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내년에 집권 4년 차를 맞는다. 권력의 이완 현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견인해 나가기 위해선 현재와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상대방의 협력이나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목적을 중시하는 목적 지향 리더십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국회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절차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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