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심야 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과 경제활성화법, 테러방지법, 노동개혁 5개법 등 쟁점 법안 처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번개회동에서 소맥(소주 맥주 화합주)으로 분위기를 다진 이들은 일요일인 20일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작금의 입법 마비, 국정 마비 사태를 감안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최근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정 의장을 상대로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우회작전에 나섰으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패착이다. 정 의장의 말마따나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은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못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 의장을 탓할 게 아니라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가 스스로를 탓해야 옳다.
그렇다고 정 의장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이다. 국회가 원활히 돌아가게 할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과는 별개로 국회 마비가 걱정될 정도로 여야의 대립이 심각했다면 진즉에, 또 필요할 때마다 중재자로 나서 합의를 유도하는 선제적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정 의장은 그동안 그런 소임을 다했는가.
더 안타까운 건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야당을 비판하며 쟁점 법안들의 처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어제도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정에 무한책임을 진 사람이다. 비판에 앞서 야당에 법안 통과를 설득하거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성심을 다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오늘은 18대 대선 3주년이 되는 날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국민 대통합’을 다짐했다.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여야 지도부는 물론이고 격식에 맞지는 않지만 국회의장까지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국정 운영의 해법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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