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면 나이가 벼슬인 줄 아는 어른이 있어요. 사회에서 만나면 그냥 개인 대 개인일 뿐이죠.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는데 나이 든 분이 초면인데도 함부로 대하고 반말하고. 꼰대가 아닌 어른이 필요한 사회입니다.”(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
동아일보는 10월부터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와 함께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메조미디어는 젊은 세대가 주로 쓰는 다음아고라, 오늘의유머 등 11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151만5243건을 분석하고 할머니, 늙은이, 꼰대, 노슬아치(노인+벼슬아치) 등 노인 세대를 지칭하는 키워드 34개를 선정했다. 이를 이용해 노인 세대에 대한 생각을 밝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 83만3374건을 통해 젊은 세대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노인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표출이 45%로 긍정적인 의견(16%)보다 많았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대중교통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았다.
○ 세대 간 전쟁터 ‘지하철 1호선’
대중교통 중에서도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언급한 것이 가장 많았다. 올해 지하철 1호선 노인(65세 이상) 승차 비율은 19%로 다른 노선(8∼13%)보다 높았다. SNS에서 1호선은 ‘노인전용선’ ‘어르신 천국’ ‘앉을 확률 0%’ ‘헬게이트’ 등으로 불린다. “1호선을 타보면 어르신 보는 눈이 달라진다.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가 생길 정도”라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3일 하루 지하철 1호선을 타보니 다른 승객을 배려하지 않는 노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청량리역을 출발한 지하철 객차 안은 파 냄새가 진동했다. 노약자석에 앉은 70대 할머니 2명은 커다란 검은 봉지에서 대파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대파에서 떨어진 흙 때문에 바닥이 더러워졌다. 젊은 승객이 할머니를 향해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뭐 할머니들이 잠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 반경 서울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선 여기저기 신발을 벗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약자석에서 등산복 차림의 70대 할아버지는 “발이 시리다”며 등산화를 벗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비슷한 연령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습을 본 임신 3개월 차 김모 씨(32)는 “공공장소에서 신발 벗고 있는 모습이 불편하다”며 일반석 쪽으로 옮겨가 서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을 담당하는 한 보안관은 “장애인 휠체어 구역에서 돗자리를 펴고 여럿이 술을 마시고, 다짜고짜 젊은 세대에게 욕하는 노인도 있다”며 “이런 행동을 제지하면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하며 화만 낼 뿐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자리 양보 문제는 1호선의 갈등 요인이다. SNS에서 언급된 갈등 요인 중 33.9%가 자리 양보로 일어난 문제였다. 젊은 세대의 머릿속은 “노약자석이 아니면 자리를 양보해야 할 의무가 없다. 노약자석도 노인만 앉는 자리가 아니라 임산부, 환자, 어린이 같은 약자도 함께 앉는 자리다”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 중심의 농촌공동체를 기억하는 노인 세대와 공공질서를 중시하며 도시에서 자란 젊은 세대 간의 생애경험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충돌이 벌어진다”며 “압축성장 속에 급속히 가치관이 변하며 세대 간 접점이 벌어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76)은 자리 양보 문제를 풀 해법을 노인 세대에 제시했다. 일반석뿐 아니라 노약자석에 젊은 세대가 앉아 있더라도 그들도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하라는 것이다.
“젊은이의 눈을 마주 보고 양보를 강요하면 젊은 세대는 무시하듯 눈을 감아요. 이러면 노인 세대는 눈을 뜨라고 손이나 발로 툭 치는데 이러면서 갈등이 커집니다. 이젠 노인 세대도 젊은 세대의 처지를 먼저 잘 헤아리고 존중해야 대접받을 수 있어요.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 대접받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 존댓말 쓰는 노인에게 감동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의 한 패스트푸드점. 이곳은 커피나 식사를 싸게 즐기려는 노인이 많이 찾아 ‘도심 경로당’으로 불린다. 그 시간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손님 44명 중 33명이 노인 세대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젊은 세대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존댓말을 쓰는 노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주문하는 노인 30명 중 23명이 반말로 주문했다. “콜라 석 잔 줘” “물 좀 줘” “커피 한 개” 등 명령하듯 반말로 주문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은 일상이 됐다. 현장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들은 “‘야야’ ‘어이’라고 불러 가보면 테이블 좀 치우라는 명령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SNS에서도 “노인은 왜 반말이 자동탑재인가” “초면인데도 반말하고 ‘어이’ ‘이봐’라고 부르는 진상 노인이 많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실제로 노인 세대의 대화법에 대한 SNS 게시글 중 반말(74.7%)이 존댓말(25.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명령조의 반말을 고집하는 대다수 노인 사이에서 존댓말 쓰는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존경심은 매우 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김모 씨는 “존댓말로 메뉴를 주문하는 노인을 만나면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서 무척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SNS에서도 “알바하면서 존댓말을 쓰던 어르신을 딱 한 분 만났는데 고마워서 잊을 수 없다” “나이 어리다고 다짜고짜 반말 듣는 게 너무 당연했는데, 존댓말로 길을 묻는 할아버지를 만난 일은 감동으로 남았다”는 글이 올라온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존댓말로 메뉴를 주문한 이모 씨(76·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예의다. 대접을 받고 못 받고는 어른 하기 나름이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는 존댓말이 꼽힌다. 설득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초면에 반말 듣는 일을 싫어해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써 준다면 노인 세대가 젊은 세대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사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영환 대한노인회 정책이사(55)는 “노인 세대는 존중받아야 할 우리 사회의 어르신이지만 이젠 젊은 세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젊은 세대가 나이를 근거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노인의 기준, 법으론 65세 국민은 “67세” ▼
“70~74세” 44%로 가장 많아… ‘60대=노인’ 지칭 갈수록 줄어
한국인은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할까.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 결과의 평균치는 67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어, 사회적인 인식 연령이 행정적 기준보다 더 높았다.
법적으로 각종 경로 우대 혜택이 제공되는 나이는 만 65세다. 대표적 혜택인 대중교통 무임승차도 만 65세부터 혜택이 주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고령사회를 분류하는 기준도 65세. 하지만 대한노인회가 5월 정기이사회에서 노인 기준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뒤부터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만 13세 이상 국민 1000명 중 70∼74세가 노인의 기준이라고 답한 사람이 44%로 가장 많았다. 65∼69세라고 답한 의견이 30.3%로 그 뒤를 이었다.
온라인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노인을 언급한 83만3374건의 글에서 노인을 ‘60대’라고 지칭하는 사례는 줄어드는 반면 ‘70대 노인’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점점 늘어났다. 2013년 게시글 중 60대를 노인이라 표현한 것은 48.6%, 70대는 20.1%였다. 하지만 이 비중은 2014년 42.1% 대 31%로, 70대가 노인이라는 비중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SNS 분석을 통해 드러난 노인의 외모는 ‘흰머리’에 ‘등산복’이나 ‘정장’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었다. 외모에 대해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 단어는 흰머리(25%) 등산복(16.4%) 지팡이(15.4%) 정장(15.1%) 주름 한복 순.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거나 “정장을 잘 차려입은 노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는 의견을 SNS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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