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단행된 법무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정권 후반기에 안정적 국정 운영을 꾀하려는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내 힘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적절한 상호 견제가 이뤄지게 배치했다는 분석이다.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48)의 사법연수원 동기(19기)들이 대거 약진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서울 출신인 이영렬 대구지검장(57·18기)의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급) 발탁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당초 검찰 안팎에선 우 수석과 친분이 두터운 김진모 인천지검장(49·19기)과 김주현 법무부 차관(54·18기)이 막판까지 경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청와대가 ‘제3의 카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획력이 뛰어난 이 지검장은 대구지검 공판부장 시절인 2004년 부실 신협을 인수해 17억 원을 부당 대출한 혐의를 받던 현직 경찰 총경을 구속하면서 ‘공판특수부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대구경북(TK) 출신이 아닌 이 지검장이 청와대나 대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실세 지검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동기 중 선두주자로 꼽히는 김주현 차관이 ‘실세 대검 차장’으로서 역할을 할 거라는 의견이 많고, 19기 고검장들의 급부상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 차장은 중앙지검장에 비해 위험이 덜하고 청와대와는 더 가까운 자리”라고 전했다. 더욱이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던 TK 출신 17기 박성재 현 서울중앙지검장(52)도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다.
17, 18기가 대거 물러나면서 고검장 승진자 6명 중 절반을 19기가 차지했다. 이창재 서울북부지검장(50)이 법무부 차관, 19기 중 TK 선두주자로 꼽히는 김강욱 의정부지검장(57)은 대전고검장에 발탁됐다. 윤갑근 대검 반부패부장(51)은 대구고검장에 임명됐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당초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우병우 민정수석의 인사”라는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인사 면면이 공개되자 “김현웅 법무부 장관, 김수남 검찰총장, 우 수석이 적절히 타협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별로는 TK 출신이 9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난 반면, 부산경남(PK) 출신은 8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호남 출신은 10명에서 11명으로, 충청 출신도 5명에서 7명으로 각각 늘었다. 수도권 출신은 14명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김주현 차관, 이영렬 지검장,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등 서울 출신이 검찰 핵심 보직을 대거 맡았다. 17기 중 김희관 광주고검장(52)이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문무일 대전지검장(54)은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두 사람은 호남 출신이다.
현재 서울고검 산하에 태스크포스(TF) 형태로 합동수사단을 꾸려 부패수사를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어 김수남 총장과 박성재 고검장의 역할도 주목할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수남 총장 취임 후 처음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지만 총장에게 힘을 전면적으로 실어줬다고 보기엔 어려운 인사”라며 “김 총장이 추진하는 반부패수사단(가칭)이나 고검 산하 반부패 TF가 모습을 드러내야 김 총장의 의중을 알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선 차기 검찰 지휘부의 경쟁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거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정의 중심을 특정 인물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의중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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