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화가 우려되는 기업부채의 비중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기업 실적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향후 금리마저 오르면 이 같은 기업들의 ‘위험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또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빚을 갚기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향후 약 5년 내에 주택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은은 “가계와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의 잠재적인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부채 중 위험부채의 비율은 올해 21.2%로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수준(16.9%)을 크게 웃돌았다. 위험부채란 기업의 실적이나 자산 규모에 비해 이자비용 또는 부채가 많아 유동성 위험을 겪을 수 있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부채를 말한다.
한은은 향후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하락하고 시중금리가 1.5%포인트 상승하는 ‘복합 충격’이 발생할 경우 위험부채의 비중이 현재의 21.2%에서 32.5%로 크게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은은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기업부채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데다 기업들의 이자 상환 능력은 떨어진다고도 지적했다.
한계기업의 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증가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만성적 한계기업’의 비율은 지난해 10.6%(2561개)로 2009년(8.2%)보다 높았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한계기업 증가 속도가 빨랐다.
▼ 가계빚, 가처분소득의 1.6배… OECD 평균 웃돌아 ▼
한은은 이에 대해 “부실 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대출이 관대해지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은퇴를 앞둔 고령층 가구의 많은 가계 빚이 향후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퇴 가구가 빚을 갚기 위해 실물자산 매각에 나서면 부동산 가격의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의 핵심 수요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 축적 연령(35∼59세) 인구는 2018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라서 부동산 매물을 받쳐줄 시장 수요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한국의 고령화 속도와 부동산 수요층의 감소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훨씬 빨라 자산 매각을 통한 가계의 빚 상환이 단기간에 집중될 우려가 있다”며 그 시기로 2020∼2024년을 지목했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고 현재와 같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 향후 인구 고령화의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계 빚 규모도 소득 수준에 비했을 때 전반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자금순환통계 기준)은 16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0.5%)을 크게 웃돌았다. 한은은 주택 거래 활성화 등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가계부채를 늘리기만 했을 뿐 가계 소득 여건은 그다지 개선시키지 못했다고 봤다. 한은은 이 밖에도 자영업자 대출과 아파트 집단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 향후 경기 위축이 발생할 경우 큰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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