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싫습니다. 호주나 영국에서 태어나지 못해 훈장은커녕 고액 체납자란 오명만 쓰고 있습니다.”
장학금으로 215억 원을 기부했다 225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은 황필상 구원장학재단 설립자(68) 얘기다. 22일 경기 수원시 구원장학재단에서 만난 황 씨는 장학 사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황 씨의 인생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청계천 빈민촌에서 고등학교를 힘겹게 졸업한 황 씨는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했다. 우유와 신문 배달에서부터 공사장 막노동까지. 먹고살기 위해 갖은 일을 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대상이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군대를 전역하고 뒤늦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6세 늦깎이 신입생으로 아주대에 입학했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응용연구소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1984년부터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도전에 목말랐다. 1991년 당시로선 드물었던 생활정보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년에 수십억 원의 돈을 벌기도 했다. 인생의 황금기였다. 원 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돈을 벌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사회로부터 받은 걸 사회에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2002년 모교인 아주대에 현금 15억 원과 자신이 세운 수원교차로 주식 90%(200억 원 상당)를 기부했다. 100%를 기부하려 했지만 학교 측에서 황 씨의 노후 등을 고려해 만류했다. 아주대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뿌듯했다. 첫해 11명의 장학생에게 1100만 원을 지급한 이후로 매해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늘어갔다. “저도 꼭 성공해서 박사님처럼 될게요”라며 황 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장학생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2008년 세무서에서 날벼락 같은 통지서가 날아왔다. 증여세로 140억 원을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장학재단에 기부한 금액이 현금이 아닌 주식이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된다는 논리였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재단에 기부를 하더라도 보유 주식의 5% 이상을 출연할 경우 증여세를 내야 한다. 재벌 등이 공익법인을 지주회사로 만들어 편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황 씨는 “가족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다.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망신만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두 딸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고, 재단 운영은 아주대에 맡긴 상태다.
법원에 증여세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부의 세습과는 무관한 경우까지 증여세를 부과한다면 오히려 공익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며 황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황 씨가 재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증여세 부과는 정당하다며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이 4년째 판단을 미루고 있는 사이 수원세무서는 140억 원에 가산세를 더한 225억 원을 내라는 독촉장을 보냈다.
그동안 세무 당국은 장학재단에서 20억 원을 가져갔다.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던 장학재단은 올 1학기에는 장학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내가 기부만 안 했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황 씨는 자신처럼 기부를 했다 세금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 알려져 기부하지 않은 부자들에게 명분만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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