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식통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소녀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인식을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1961년 체결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 22조는 “접수국은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소녀상 설치를 막지 않아 대사관의 품위를 떨어뜨렸고 소녀상의 인도(人道) 점유를 허용한 데다 공관 반경 100m에서 집회를 할 수 없는 집시법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 일본 “소녀상은 빈 협약 위반” 주장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런 주장에 “터무니없다”고 대응한다. 소녀상이 빈 협약 위반이라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고 시민단체가 설치한 소녀상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고 피해자 구제를 팽개친 일본 정부가 소녀상 설치와 수요 집회가 이어지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라고 한국은 보고 있다.
일본의 잇단 억측 보도에 대응을 자제하던 외교부는 26일 ‘한국 정부가 서울 남산 추모공원으로 소녀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까지 나오자 “일본의 저의가 무엇인지, 회담의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며 단호하게 맞섰다.
일본은 2014년 4월부터 27일까지 12차례 진행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소녀상은 일본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로 한일 협상 타결 이후 관련 단체 의견을 들어 처리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 “일본이 가장 아파하는 게 소녀상”
일본과 위안부 협상에 깊숙이 관여한 한 인사는 “일본이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게 위안부 소녀상이다. 국제사회 앞에 굉장히 창피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안부(comfort women)’가 실제는 ‘성노예(sex slave)’이고 반인륜 범죄의 희생자였음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1000회를 맞았던 2011년 12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중심이 된 시민 모금으로 설치됐다. 전국 27곳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등 해외에도 세워져 ‘전쟁 여성 인권 피해’와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해외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 압력을 넣고 있다. 글렌데일 시장이 이후에 “일본의 미움을 받는 도시가 됐다. 소녀상 설치를 후회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을 정도다.
소녀상 쟁점화는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부터 받아 낸 것도 있다’며 우익 성향의 국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협상 전략으로 위안부 해법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시작해 나머지 지역에 대한 철거 요구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정대위) 관계자는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에서 2017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르칠 계획인데 (소녀상 이전으로)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렌데일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가주한미포럼(KAFC) 김현정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면서도 성노예 제도 운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대협은 26일 성명을 내고 “소녀상 철거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역사를 제거하려는 시도이며, 문제 해결의 또 다른 걸림돌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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