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째 ‘한 우물’을 파온 백규현 목화표 장갑 대표는 지체장애를 넘어 지역 대표 기업가로 우뚝 섰다. 목화표 장갑 제공
《 한쪽 팔을 쓸 수 없으니 남들보다 두 배 더 일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기에 장애인용 특수 리프트에 착안했다. 귀가 들리지 않으니 더 치열하게 연구에 매달렸다. 불편한 몸도, 남들의 시선도 그들의 경영 의지를 꺾지 못했다. 지역 대표 장갑 브랜드와 연 매출 100억 원의 승강기 강소기업, 한국커피아카데미 지정 커피전문 교육기관을 일궈낸 장애인 최고경영자(CEO)들의 이야기다. 장애인 CEO들은 이제 자신이 키워낸 회사를 통해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 장벽을 넘어 더 큰 희망을 전해준 이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전한다.》
대구 경북지역에서 흰 목장갑으로 유명한 ‘목화표 장갑’. 목화표 장갑은 1976년 문을 연 뒤 올해 40년째를 맞고 있는 대구 지역의 대표 장갑 브랜드다. 이 회사를 일군 백규현 대표(67)는 왼팔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다.
○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가족 경영론’
백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사고를 당한 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영영 왼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됐다. 건강했던 팔은 안쪽으로 굽어진 채 굳어버렸다.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발을 디뎌 화장품 유통업계에서 사업 수완을 배우고 창업을 구상했다.
28세의 나이로 처음 경북 성주군에 있는 작은 장갑공장 경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백 대표의 신조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였다.
이후 백 대표는 40년간 꾸준히 장갑 사업의 한 우물을 팠다. 처음 목장갑 등 기본적인 생활형 장갑 제조에서 출발한 사업이었지만 지역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번창해갔다. 공장이 성장해가며 고용 여력이 늘자 백 대표는 그만큼 지역 내 장애인 근로자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에는 70%의 근로자가 중증장애인이었을 정도로 높은 장애인 고용률을 달성했다.
현재도 고용 중인 직원 50여 명 중 38명이 발달장애, 지체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신체장애를 갖고 있다.
▼ “조금 답답해도 함께가야”… 장애 직원 70% 넘어 ▼
백 대표는 “장애인들도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 업무 집중도와 숙련도는 비장애인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평소 작업장에서도 “우리는 가족이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40년 한 우물의 비결인 ‘가족 경영론’이다.
○ 화마(火魔)를 넘은 매출 두 배 신화
백 대표는 10여 년 전 큰 위기를 겪었다. 연간 매출액이 수십억 원 단위로 접어들 만큼 사업이 번창하던 2004년, 화마가 공장을 덮쳤다. 회사의 자랑이던 생산 설비들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백 대표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마 직전 이미 목화표 장갑은 여러 곳에서 도전을 받고 있었다. 30년 가까이 지역에서 성장해 오면서 주변엔 경쟁사가 속속 늘어갔다. 기존과 똑같은 설비로는 점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때였다.
백 대표는 불에 타 텅 빈 공장을 아예 완전히 새로운 신기술 공법을 적용한 설비들로 채워 넣었다. 동사, 은사, 폴리우레탄 등 장갑용 신소재를 끊임없이 실험한 끝에 정전기를 방지하거나 먼지가 나지 않는 기능성 장갑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기능성 장갑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 목화표 장갑은 전국 각지의 대기업 유통업체와 자동차 기업 등 대형 사업장에 작업용 장갑을 납품하는 주요 공급처로 떠올랐다. 연 매출은 11년 전 화재 때보다 두 배 늘어난 80억 원이 됐다. 가족 경영을 바탕으로 직원 모두가 합심해 진정한 전화위복을 만들어낸 것이다.
백 대표는 2013년 모범장애경제인으로 선정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40년 경영 소회를 묻자 백 대표는 “처음 품었던 신념과 열정이 변치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정 가치 있는 기업 경영의 길”이라며 “장애인 기업이 기죽지 않고 당당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더 많은 독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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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09:12:35
사장님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성공에 박수를 보냅니다 두손 두다리 멀쩡한 젊은 것들이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세상에 귀감이 되는 인물입니다. 사업의 무궁한 번창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2015-12-29 11:58:52
애국자이십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회에서 냉대받는 장애인들과 함게 회사를 키워가신 사장님 존경합니다. 200년이상 가는 장수 기업으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