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그제 타결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외교부는 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와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각각 1, 2차관을 보내 경위를 설명했지만 “어느 나라 외교부냐”는 거센 비판만 들었다. 피해자들의 사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정부가 일본과 전격 합의한 것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위 외교 당국자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일본과의 협상에 대해 설명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연휴 기간 중 여러 가지가 급하게 진전이 이뤄졌다”고 뒤늦게 변명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동맹, 한미일 3각 협력 강화 등 대승적 차원을 고려한다고 해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번 합의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합의 내용 중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이라고 한국 정부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높다. 향후 사안의 전개 과정에서 정부의 자승자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피해자들의 불만을 듣다가 “이번 합의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겠다”며 “후속 조치에 대해 의견을 주시면 보완하겠다”고 말한 조태일 외교부 2차관은 일본과 재협상이라도 할 작정인지 의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더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해도 민간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를 막을 순 없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과 국내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민간에서 하는 일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식으로 민간활동까지 족쇄를 채우려는 일이 반복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번 합의로 인해 위안부 문제는 이제 한국 정부가 피해자 할머니들과 정대협 등을 납득시켜야 하는 국내 문제로 전환됐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교수인 빅터 차는 “국내적으로 야당의 반대와 비정부기구의 반발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합의를 최종적 해법으로 규정한 한국 정부에 부담이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피해자와 국민의 이해를 당부하는 짤막한 메시지를 낸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거나 청와대로 초청해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합의안을 받아들여 달라고 간곡히 설득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피해자들과 국민이 공감해야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고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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