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64)은 한국 야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1960년대 경남중고교 시절 야구 유망주였던 그는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줄곧 야구 해설을 하고 있다. 올림픽, 아시아경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주요 국제대회 때도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 야구를 화려하게 수놓은 4번 타자들을 논할 때 허 위원이 떠오른 이유다.
허 위원은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4번 타자는 상징적인 존재다. 야구 흥행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대 초반이던 1960년대 대표팀 4번 타자로 사상 처음 한국의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이끈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을 비롯해 이승엽, 이대호 등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강타자들과 야구 붐이 궤적을 같이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허 위원은 “4번 타자에게 거는 국민적인 기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대팀의 집중 견제도 심하다. 선수가 받는 압박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선수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엽을 예로 들었다. 이승엽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극도의 부진에 허덕이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2-2로 맞선 8회 상대 마무리 이와세로부터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냈다. 허 위원은 “그때 일본 타격 코치가 그러더라. 깻잎 한 장 차이로 이승엽이 홈런을 친 것이라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이승엽이 눈물을 다 흘렸겠는가”라고 회고했다.
허 위원은 4번 타자의 요건으로 힘, 장타력, 타격기술, 담력을 꼽았다. 더그아웃 안팎에서 동료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강조했다. “야구는 정직하다. 타고난 소질만 갖고 절대 될 수 없다. 잘되는 선수를 보면 하루에 몇 시간도 부족해 새벽까지 배트를 휘두른다.” 흔히 절정의 타격 감각을 보이거나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선수는 공이 수박처럼 보였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허 위원은 “땀 흘린 만큼 집중력이 높아지고 타격에 대한 영감을 얻게 돼 어떤 구질의 볼이 들어올지 예측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한국의 4번 타자는 무아지경을 여러 차례 경험한 인물들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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