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물은 절반 이상 채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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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2월 30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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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6년도 예산안이 197명 의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동아일보
2015년 12월 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6년도 예산안이 197명 의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동아일보
물이 반쯤 남은 컵. 낙관론과 비관론에 대한 오래된 은유다. 그런데 그 물이 단순히 마실 물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불을 꺼야 하는 소방차의 물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는 낙관적 시각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아질 것이다. 재정은 흡사 소방차의 물과 같다. 불이 났을 때 출동해 불을 꺼야 한다. 경기가 침체됐을 때 정부 재정을 풀어 임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복지 서비스를 통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경기 하락폭을 줄여주는 구원투수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 경직성이다지금 한국 재정은 건전한가. 소방차에는 물이 얼마나 차 있는가. 밖에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평가가 이어진다. 2015년 11월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간한 ‘2015년 재정 상황 보고서’는 한국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규모 및 추이가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2015년 12월 18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 단계 더 상승시켰다. 전체 10개 등급 가운데 위에서 세 번째 등급으로 역대 최고인 데다 일본, 벨기에, 대만 등을 제치고 세계 8위에 올랐다.
외부 평가는 이처럼 너그럽지만 안에서는 낙관적인 시각이 많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결국 2%대로 하락했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고령화 추세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민연금 수급자 상승에 따른 복지 지출 증가와 남북통일에 대비한 재정여력(fiscal space)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음을 감안하면, 밖에서 들려오는 칭찬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386조4000억 원에 달하는 2016년도 예산이 2015년 12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복지 예산이 123조4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비중도 전체의 31.9%로 가장 컸다. 2016년 어려운 경기 상황을 뒷받침한다는 취지에서 총지출 예산의 증가율은 전년 대비 2.9%로 총수입 증가율 2.3%보다 높게 책정됐다. 2016년에도 큰 적자를 보도록 짜여 있는 예산이라는 뜻이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과연 그래도 좋은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박근혜 정부 4년 차인 2016년까지 9년 동안 우리나라 재정구조의 변화 추이를 꼼꼼히 살펴보면, 먼저 세출 측면에서는 문화·복지 등 연성 예산이 크게 증가하고, 도로와 철도를 포함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등 경성 예산이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2016년도 문화·체육·관광 예산의 규모는 1조7000억 원에 불과하지만 증가율은 8.3%로 가장 높았다. 반면 2016년 가장 크게 감소한 분야는 SOC 예산으로 전년 대비 4.5% 줄었고,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도 1.0% 감소했다. 선진국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경제 예산을 줄이고 복지 예산을 늘려가는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단 바람직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교육 예산과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이 하락 추세에 있다는 사실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연평균 10.3%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던 R&D 예산은 2013년부터 4년간 연평균 4.5% 증가하는 데 그쳤고, 2016년도 예산에서는 1.1% 증가에 머물렀다. 교육 예산도 비슷한 추세로 급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정 경직성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적으로 반드시 지출할 수밖에 없는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이자 등 의무지출 비중이 전체 예산의 47.4%까지 증가했다. 재정 경직성이 심해지면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여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부 재정이 119 구급차 노릇을 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세입 측면에서는 조세부담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9.6%까지 높아졌던 조세부담률은 2016년 18.0%로 떨어져, 2008년부터 시작된 하락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세금이 걷히는 속도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 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라진 중기재정계획 실효성근본적으로는 재정적자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16년 -36조9000억 원으로 2008년부터 9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그래프 참조). 2017년에도 확대재정정책의 기조가 유지될 공산이 높은 만큼 10년 연속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기정사실에 가깝다. 2016년 국가채무는 644조9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고 GDP 비중도 40.1%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40%대에 진입하게 된다.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노란불이 켜지는 셈이다.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의 비중이 57.8%로 계속 상승하고 있어 채무 질도 나빠지는 추세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정부의 5년 단위 재정계획이 과연 실효성 있게 유지되고 있는지 의구심을 피하기 어렵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초기 5년 단위 중기재정계획을 처음 시도한 이래 12년이 지났지만, 목표치와 실적치 간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년도 예산 편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제고하고자 도입된 5년 단위 재정계획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렇듯 최근 수년 사이 본격화된 한국의 재정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더욱 적극적인 관리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먼저 5년 단위 재정계획을 새 정부 임기가 시작할 때마다 평가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이 계획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는 R&D와 교육 등 총요소생산성 향상과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하락 추세를 완만하게 관리하는 등 좀 더 전략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조세부담률이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 있도록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원의 투명성을 높이는 세입구조 개혁도 수반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내수 활성화가 가능해져 경기가 좋아지고, 그 덕에 다시 소비세와 소득세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면 금상첨화다. 소방차의 물은 항상 절반 이상 채워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dykim@h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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