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방이동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500년 가까이 한성백제의 영역이었다. 백제 역사 678년 가운데 가장 오랜 세월을 하남시 일대를 포함한 서울 지역에서 보냈다. 백제 국력 또한 이 시기에 가장 강성했다. 한성백제의 실체를 증명해줄 것이라 여겼던 서울 방이동 고분군이 1976년 발굴 조사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이곳에서 신라 토기가 출토돼 신라 고분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 학자들은 해답을 찾고자 몇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첫째 방이동 1호분은 6세기 중반 이후 신라에 편입된 다음 축조된 것이라 보는 견해, 둘째 방이동 돌방무덤을 포함한 서울 강남 지역 돌방무덤 모두가 한성 백제시대에 축조됐으며 후대 신라인이 재사용했다는 견해, 셋째 방이동 고분군을 축조한 주인공은 신라에 병합된 가야계라는 견해 등이다. 특히 세 번째 견해는 방이동 돌방무덤들이 시기적으로나 구조적으로 6세기 후반대 신라 주변 지역의 돌방무덤들과 관련 있는 것을 근거로, 한강 유역이 신라에 편입된 뒤 한주(漢州 : 漢山州) 지역의 관리를 위해 이주시킨 가야계 세력자들의 무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백제 역사를 기록한 문헌사료가 부족해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한성백제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의 위치를 놓고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백제에는 박사 고흥이 편찬한 ‘서기(書記)’ 등 역사서들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고구려의 ‘유기’ 100권과 ‘신집’ 5권, 신라 거칠부가 편찬한 ‘국사’도 사라져버렸다. 때론 나라를 잃는 것보다 기록을 잃는 것이 더 안타까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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