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약칭 더민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다. 동아일보와 채널A의 신년 여론조사에서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을 선언한 지난해 12월 21일 이후 10여 일 만에 이뤄낸 반전(反轉)이다.
여전히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꿈틀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4월 총선 투표 시 지역구 현역 의원보다 정치 신인을 찍겠다는 응답률이 높은 것도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총선에서 안철수 신당의 선전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야권 분열 속에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새누리당으로선 안철수 신당과 더민주당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최상의 구도’다. 그럼에도 야권의 패권 경쟁이 새누리당에 ‘축복’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 ‘안철수 신당’ 호남과 수도권에서 약진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호남에서 제1당은 안철수 신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호남 지역 응답자 중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28.6%로 1위였다. 더민주당의 지지율은 22.9%로 5.7%포인트 뒤졌다. 호남에서 제1당을 차지한다는 건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쥔다는 의미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 세력들의 ‘호남 구애’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도 안철수 신당의 약진은 눈에 띄었다. 경기 인천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23.0%로 새누리당(36.0%)보다 13%포인트 낮았지만 더민주당(13.7%)보다 9.3%포인트 높았다. 안철수 신당은 대구 경북(TK)과 부산 울산 경남(PK)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더민주당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일단 ‘대안 야당’ 출현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셈이다.
그렇다고 안철수 신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지지 정당과 상관없이 총선에서 어느 당이 제1당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6%는 새누리당을 꼽았다. 안철수 신당은 5.2%로 더민주당(6.0%)보다 낮았다.
지지 정당별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 새누리당이 제1당이 될 것이란 응답은 87.6%였다. 더민주당 지지자 중에선 26.4%가 더민주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안철수 신당 지지자 가운데는 18.9%가 제1당 후보로 안철수 신당을 꼽았다. 안철수 신당 지지자의 충성도가 가장 낮다는 얘기다. 앞으로 창당 과정을 지켜보는 ‘관망형 지지자’가 많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안철수 신당에 밀리고 있는 더민주당의 처지에선 정의당과의 연대가 더욱 절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의 지지율(3.4%)을 더해야만 안철수 신당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에 따라 야권이 요동칠 수 있는 대목이다. ○ 새누리당에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핵심 측근은 “야권의 표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더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나란히 가는 것은 새누리당으로선 ‘환상의 구도’”라고 했다. 야권이 분열되더라도 한쪽으로 표심이 쏠리면 결국 여야 간 일대일 맞대결 구도가 돼 수도권에서 여당이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민심이 일방적으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을 찍겠다’는 응답은 24.4%에 그쳤다. ‘정치 신인을 선택하겠다’(31.1%)는 견해가 더 많았다. 20대 총선에서도 ‘물갈이 여론’이 거셀 수 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밀어붙이면 현역 의원 상당수가 다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가 앞장서서 명망가들의 ‘험지 출마론’을 들고나온 이유다. 하지만 당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전략공천이 아닌 한 아무리 명망가라도 경선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2014년 상향식으로 진행된 서울시장 경선에서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탈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친박(친박근혜)계도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는 ‘TK 물갈이’에 집중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대구 동을)가 정면충돌하자 TK를 중심으로 당내 세력 교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여론조사에서 유일하게 TK에서만 현역 의원을 찍겠다는 응답(32.7%)이 정치 신인을 선택하겠다는 응답(24.9%)보다 높았다. ‘진박(진짜 친박) 마케팅’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의 계파 간 내홍과 야권의 세력 간 분열이 어떤 정치 지형을 만들어낼지, 유권자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앞으로 4·13총선이 10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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