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오후 7시 40분 국회 본관 3층 엘리베이터 앞. 정의화 국회의장은 퇴근길에 직권 상정할 선거구 획정안의 부결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영어로 대답했다. 선거구 획정 직권 상정 절차 돌입을 앞둔 정 의장은 “그것(부결)을 제일 걱정하고 있다”면서도 “하느님만 아는 것을 우리 인간이 괜히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여야 협상이 이뤄지지 않자 정 의장은 1일 0시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에 5일까지 획정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의원정수 300명(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 △획정 인구 기준일 2015년 10월 31일 △자치 시군구 분할금지 예외 인정 3가지를 제시했다.
정 의장은 자치 시군구 분할금지 예외를 위한 세부 요건으로 △5개 이상 자치 시군구가 합쳐지거나 △선거구 인구편차 ‘2 대 1’ 충족을 위해 불가피하거나 △인구 상한이 초과되는 수도권 분구 대상 선거구 최대 3곳 등 3가지를 명시했다.
한마디로 현행대로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을 기준으로 획정안을 마련하되 늘어나는 수도권 의석 중에 최대 3석을 통폐합이 예상되는 농어촌 지역구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직권 상정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본회의 통과 여부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직권 상정을 하려면 선거구획정위에서 획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미 10월에 현행 지역구 246개를 기준으로 논의했다가 영호남 등의 의석 배분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의결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획정안이 마련돼 직권 상정되더라도 본회의 가결은 불투명하다. 수도권 3석을 농어촌 지역에 배려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인구 편차 ‘2 대 1’ 규정에 따라 대규모 통폐합이 예상되는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선거구 획정안만 통과시킬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개혁 5개 법안 등 쟁점법안을 먼저 처리하자는 것으로 선거구 무효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31일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선(先) 민생경제 법안, 후(後) 선거구 획정 처리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도 “노동개혁 5개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 선거구 획정보다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강조했다.
여당 지도부는 안철수 의원 탈당으로 야권이 내홍을 겪다 보니 여야 간 협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원 원내대표는 “(야당의) 리더십이 붕괴돼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도부에서 결정된 사안도 상임위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지도부, 상임위가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며 아무 결정도 못하는 게 정상적인 정당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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