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투고작을 심사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는 언제나 같다. 젊고 새로운 작품이 있기를, 날카로운 도전의 미학이 있기를, 기성에 물들지 않은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기를, 그리고 시조의 경우 하나 덧붙여서, 정해진 음보(마디)를 자신의 가락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노래가 있기를 빈다. 올해도 이 기도에 응답해주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울돌목에서’ ‘하피첩을 읽다’ ‘금빛 자오선’ ‘거미’ ‘응웬씨의 저녁’ ‘날, 세우다’ 등이 그랬다.
‘울돌목에서’와 ‘하피첩을 읽다’는 역사적 소재를 시화한 작품으로 시대의식을 반추하고 촉구하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큰 울림과 개성이 부족해 보였다.
오늘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금빛 자오선’의 경우, 시조의 사명을 자각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지만 인식의 깊이나 시문장의 묘미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거미’와 ‘응웬씨의 저녁’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체험 위주의 작품들로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는 성공적이지만 이 시조를 쓴 시인들의 상상력의 깊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선자들은 ‘날, 세우다’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삶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대성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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