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어제 “저출산·고령화라는 구조적인 과제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며 “도전, 도전, 그리고 도전뿐”이라고 연두 소감을 발표했다. 한국에선 손에 잘 잡히지 않아 미루고 미뤄온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당장의 ‘구조적 과제’로 명시하고 도전적으로 극복해내겠다는 자세가 부럽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올해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한다. 20년 전의 일본과 일치하는 인구곡선이다. 재계에서 내놓은 신년사를 보면 거대하게 밀려오는 위기를 얼마나 절박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저출산·고령화로 국가 예산을 운용하는 데 차질이 예상된다”고 했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익숙한 것을 걷어내고 변화를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위기 경고음이 커지는데도 작년 말 개각으로 수장이 바뀐 5개 부처 공무원들은 장관 인사 청문회 준비로 바쁘다. 경제정책을 총괄해야 할 기획재정부 핵심 국장은 이번 주만 두 차례 유일호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있는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을 찾아 청문회 예상 문답의 연습 상대를 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박사 논문처럼 두꺼운 청문회용 보고서나 만들면서 골든타임을 흘려보내니 국가적 과제에 몰두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어제 내놓은 ‘수출입 동향 및 전망’ 보고서 역시 관료사회의 현실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 순위가 전년 7위에서 6위로 뛰었고 올해 수출은 지난해보다 2.1% 늘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교역 축소로 다른 나라의 실적이 더 부진해서 한국의 순위가 높아진 것이고, 보호무역 장벽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세계 경기가 올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교역량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는 인식은 안이하다.
지금은 정부가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기업을 쫓아다니며 도와줘도 모자라는 절박한 시기다. 유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에 올인할 게 아니라 구조개혁과 고부가가치서비스업 중심의 내수육성 전략을 짜야 한다. “성 쌓는 데는 3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하루가 걸린다”는 아베 총리의 위기감과 도전정신이 새 경제팀 후보자들에게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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