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교복-산후조리? 선거 앞둔 무분별 지원 믿음 안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6일 03시 00분


[봇물 터진 票 복지]<上>성남發 복지 포퓰리즘

“나도 애가 셋이라 교복 공짜로 주면 좋지만, 이게 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에요?”

5일 만난 맞벌이 주부 정모 씨(39·여·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성남시의 3대 무상복지정책이 실시되면 앞으로 수년간 혜택을 볼 수 있지만 표정은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정 씨는 “산후조리와 교복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사탕을 입에 물렸다 빼듯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데 마냥 좋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3대 무상복지 강행을 밝힌 다음 날 성남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공짜 지원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과연 실현 가능할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앞다퉈 내놓은 포퓰리즘 정책의 속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재정자립도 60%인데 복지에만 펑펑?

올해 처음 시행하는 3대 무상복지 외에도 성남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실시하지 않는 복지사업이 10여 건에 이른다. 전체적으로는 대략 600억 원 규모다. 창의인재 개발이란 명목으로 학생들의 수영이나 독서토론 등을 지원하는 데 200억 원, 사실상 무상보육 개념인 어린이집 차액보육료 지원 사업에 16억 원, 어린이집 교사 지원 사업에 36억 원 등이다.

성남시의 올해 예산은 2조3000억 원.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평가한 2014년도 지자체 재정 분석에서 건전성 분야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성남시의 세수(稅收) 대비 예산액을 비교하는 재정자립도는 60% 수준이다. 전국 기초 지자체 중 상위권이긴 하지만 이처럼 복지정책을 쏟아내는 것에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형수 단국대 교수(행정학)는 “성남이 재정자립도가 우수해 복지 확대가 당장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복지 때문에 기반시설이나 다른 분야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공공근로 사업과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 저소득층 자활을 돕는 사업이 줄줄이 축소됐다. 두 사업은 저소득층이나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월 최대 81만 원(65세 미만)을 지급하는 것이다. 성남시의회에 따르면 공공근로 사업비는 지난해 약 54억 원에서 올해 30억 원으로,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비는 18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 표 되는 복지 OK, 표 안 되는 복지는 NO?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성남시민들도 마냥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진모 씨(77·분당구)는 “재정 형편이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 복지만 내세우니까 걱정이 된다”며 “올해 총선도 있고, 이 시장도 얼굴 더 알리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년배당이 시행되면 혜택을 받게 될 차모 씨(24·취업준비생)는 “솔직히 나야 받으면 좋겠지만 이건 투표나 한 번 해 달라는 보여주기식 정책의 느낌이 강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과연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장수(長壽)수당 폐지와 청년배당 신설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했다. 장수수당을 받았던 전모 씨(92·여)는 “없는 사람들은 3만 원만 가져도 이것저것 할 게 많고 사람답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주던 걸 빼앗으니 너무나 섭섭하다”고 했다. 김모 씨(90·여)도 “올해 받으면 병원 가고 약값에도 보태려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노환인 성남시의원(새누리당)은 “지방교부세를 받지 못한다며 장수수당을 없애더니 3대 무상복지 정책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하는 것은 모순이며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며 “결국 다가올 총선에 영향을 미칠 의도이거나 시장 개인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성남은 금수저, 용인 광주는 흙수저?

경기 안성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체 복지사업 계획을 한 건도 수립하지 못했다. 매년 늘어나는 국고 보조 복지사업의 비용을 대기도 빠듯해서다. 안성시의 전체 예산 중 복지사업 비중은 지난해 31.7%. 이는 모두 국고 보조 사업에 쓰였다. 올해도 전체 예산의 35%가량이 국고 보조 사업에 집행될 예정이다. 이런 안성시에 성남시의 3대 무상복지는 먼 나라 이야기다. 안성시 관계자는 “직원조차 뽑지 못하는 상황에서 따로 복지정책을 만들 여유가 전혀 없다”며 “자체적인 복지사업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했다.

성남과 인접한 광주시, 용인시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유금주 씨(69·여·광주시 오포읍)는 “한 나라, 그것도 바로 이웃에 살면서 성남은 주고 우리는 안 주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태 씨(45·용인시 수지구)는 “용인시는 경전철 부채 갚는다고 긴축재정을 해왔는데 옆 동네는 복지에 마구 쓴다고 하니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도로 하나 차이로 이렇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고 정부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소영 씨(35·수지구)는 “성남 무상복지 얘기를 듣고는 나도 성남으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김영균 군(18·수지구)은 “분당에는 잘사는 애들도 많은데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떠올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성남=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복지#포퓰리즘#성남#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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