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관객수 4만3천9백44명의 영화가 이변을 낳았다.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초저예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주연을 맡은 이정현이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이정현의 힘.
대종상영화제가 ‘불참배우 수상불가’ 논란으로 수상 후보들의 대거 불참 사태를 빚으며 파행 운영된 것에 반해 2015년 11월 말 영화인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치러진 청룡영화제. 올해 화제를 모은 영화들에 상이 골고루 돌아가 더욱 빛이 났던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2억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타이틀롤 이정현(36)이었다. 지난해 8월 개봉해 총 4만3천여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에서 이정현은 순수, 억척, 광기를 오가며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에서 이정현이 맡은 역할은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던 주부 수남. 취득한 자격증만 14개에 달하던 수남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한 뒤 집 장만을 위해 투 잡, 스리 잡을 뛰어가며 열심히 살지만 빚은 늘어만 간다. 그러다 찾아온, 빚을 한 방에 청산할 기회. 하지만 그마저도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자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세상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1996년 영화 ‘꽃잎’으로 신인연기상을 받은 후 19년 만에 다시 청룡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거머쥔 그는 12월 5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다”면서 “김혜수 선배님, 전도연 선배님, 전지현 씨, 한효주 씨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생각지도 못한 수상에 너무 놀랐고, 그 바람에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많이 빠뜨려 죄송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청룡영화상 덕분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시 개봉돼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릴 기회가 생긴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꿈만 같다”고 밝혔다. 작품이 좋으면 개런티 따지지 않아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이정현이 영화 출연료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 스태프들의 아침 식사까지 챙겼다는 훈훈한 미담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12년 1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던 ‘범죄소년’ 출연 때도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
“배우에게는 관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는 것만큼 기쁘고 감사한 일이 없어요. 그래서 개런티를 따지지 않고 작품이 좋으면 그냥 하게 되더라고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너무 재미있어서 출연했어요. 시나리오를 읽는 데 보통 서너 시간이 걸리는데 이 작품은 한 시간 만에 다 읽었거든요. 첫 장면부터 빠져들기에 안국진 감독님께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재개봉돼 무대 인사를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이정현은 그사이 다음 작품도 결정했다. 차기작도 노 개런티 출연인지 묻자 그는 “아니다. 상업영화다”라고 답했다.
“차기작 촬영이 새해 초부터 시작돼요. 그동안 보여드린 적이 없는 캐릭터를 맡아서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2016년에는 그 영화로 많은 관객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좋은 사람 만나 연애도 하고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만남의 기회가 줄고 있어요. 보는 눈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데도요. 성실하고 착하고 키 큰 남자가 좋아요. 이런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웃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