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까지 고기를 먹지 않던 내게 신세계를 보여준 음식점이 있다. 1975년 서울 황학동 허름한 기와집에서 시작한 ‘원할머니보쌈’이다. 성북구 안암동에 살던 나는 그곳까지 걸어 다녔다. 초등학교 친구들, 교회 친구들, 대학 친구들과 이곳을 마실 다니듯 다녔다. 단맛이 올라오는 부드러운 돼지고기 수육과 보쌈김치는 멋진 하모니를 이뤘다. 단백질의 느끼함을 겉절이 김치의 신선함이 잡아줬다. 허름한 내부도 정감이 갔다. 1997년 ‘원할머니보쌈’은 체인사업을 시작했다. 기와집은 빌딩으로 바뀌었다. 기분 탓인지 그때부터 옛날 맛을 느끼지 못했다. ‘원할머니보쌈’을 기점으로 신림동에서 유명했던 ‘놀부보쌈’도 체인사업을 시작해 2000년대 초반 보쌈 프랜차이즈가 10여 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보쌈은 내게 안 맞는 옷처럼 불편했다. 그 무렵 발견한 곳이 성동구 금호동의 ‘은성보쌈’이다. 1980년 초 시작한 ‘은성보쌈’은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었다. 넓은 실내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푸짐한 양의 질 좋은 수육과 달달한 맛의 김치를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청춘의 시대를 통과하던 우리에게 ‘은성보쌈’은 작은 축복이었다. 10여 년 전 ‘은성보쌈’의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의 금남시장 안으로 옮겼다. 이후 발길을 끊었다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은성보쌈’의 보쌈은 여전히 먹을 만하다. 배, 밤, 잣, 완두콩 같은 화려한 양념이 들어간 보쌈김치는 달지만 맛있다. 보쌈도 나쁘지 않다. 기름기가 너무 많아 싫다는 이들도 있지만 기름기 없는 보쌈은 퍽퍽하다. 10여 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맛이 아닌 양과 가격이었다. 중구 방산시장 주변에는 요즘도 보쌈 마니아의 발길이 이어지는 ‘장수보쌈’이 있다. 허름한 외관과 내부, 몇 개뿐인 테이블, 길거리에 벌여놓은 좌판(겨울 제외)이 인상적이다. ‘장수보쌈’이란 간판 옆에 ‘원식당’이란 이름이 따로 붙은 게 특이하다. 이곳 창업주는 ‘원할머니보쌈’의 인척으로 창업 초기부터 부엌에서 일한 분이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이전의 ‘원할머니보쌈’ 분위기와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보쌈을 시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을 숭덩숭덩 썰어준다. 목살이나 앞다리를 사용하는데 살코기 7에 기름 3 정도의 비율로 고기가 나온다. 보기만 해도 식욕을 당기는 새빨간 보쌈김치는 단맛이 강한 편이다.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시원하고 달달한 김치가 한 몸처럼 잘 어울린다. 보쌈은 원래 개성 음식으로 ‘보김치’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산둥 배추가 토착화에 성공하면서 개성과 한양의 배추가 유명해졌다. 개성 배추는 반결구형 배추이고,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배추는 결구형이다. 반결구형 배추는 길이가 길어서 돌돌 말아 먹어야 제맛이었다. 즉 보쌈 형태로 먹어야 했다. 상인의 도시답게 개성의 보김치는 화려했다. 수십 가지 재료가 들어가고 빨갛게 고춧가루를 쓰지만 맵기보다 단맛이 강하고 풍성한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보김치가 일제강점기 이후 보쌈김치로 변했다. 보쌈김치와 돼지수육을 함께 먹은 것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일제강점기 덩치가 큰 외국 돼지가 본격적으로 사육되면서 돼지고기를 삶아 먹는 문화가 시작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 겨울 채비의 핵심이던 김장은 온가족이 며칠 동안 참여하는 집안 대사였다. 갓 담근 겉절이 김치에 돼지고기를 삶아 막걸리나 소주를 곁들여 먹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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