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현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외모나 심리적인 면에서 왠지 흐트러져 있다는 인상을 줬던 그가 최근 한결 날씬해지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가 매일 2시간씩 걷게 된 이유와 배우 아닌 엄마, 인간 고현정의 속내를 들려줬다.
2013년 드라마 ‘여왕의 교실’ 이후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고현정(45)은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집 밖을 잘 나가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최근 그가 펴낸 두 번째 여행 에세이 ‘현정의 곁, 가까이 두고 오래 사랑할 도쿄 여행법’에도 묘사돼 있다. ‘극소심’ ‘트리플’ A형인 고현정은 어려서부터 큰 키가 최대 콤플렉스이다 보니 또래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자신의 방 침대 위에서 누워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데뷔 후에도 방송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불편해 애꿎은 대기실 쓰레기통을 비우러 다니기 바빴다고. 이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다소 폐쇄적인 생활이 최근에는 건강과 체형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여신 같은 외모로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였던 그가 최근 몇 년 사이 무너진 몸매 라인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SBS Plus ‘현정의 틈, 보일樂말락’(이하 ‘현정의 틈’)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현정은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뽀얀 피부야 워낙 그러려니 치더라도 얼굴 전체에 감도는 생기는 분명 오랜만이었다. 이유는 바로 ‘걷기’에 있었다. ‘현정의 틈’은 고현정의 이번 새 책 발간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고현정의 동경 여행기도 함께 담고 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고현정은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행서는 총 8번에 걸쳐 시리즈로 제작되는 에세이로 지난해 첫 번째 여행 에세이 ‘풍경, 사람, 기억에 관한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를 펴냈다.
“여행 에세이 프로젝트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소속사 대표, 제 남동생이에요. 그동안 제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살도 찌고 우울해하니까 걱정이 많이 됐나 봐요.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을 생각하다 여행 에세이를 만들기로 했어요. 이번 동경 여행은 20년 전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특히 그동안 제가 타고난 행운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너무 바보같이 살았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덜 끼치도록 밝게 살기로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걷기를 시작했어요. 매일 2시간 반씩 산책을 하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살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요(웃음).”
고현정이 동경에서 스물네 살의 고현정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곳에서 신혼을 보냈기 때문이다. 1995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결혼한(2003년 이혼) 고현정은 그해 동경으로 건너가 2년 6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들이 일상이라 부르는 평범한 삶을 산 순간들이었다. 난생 처음 혼자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고,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고, 혼자 자전거도 타며, 늦은 밤 남편과 위스키 한잔 후 산책을 즐기는 지극히 소소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도쿄 여행 중 만난 스물네 살의 나 신혼생활을 둘러싼 담담한 고백은 지난해 12월 19일 첫 방송된 ‘현정의 틈’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이처럼 방송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동안 연예인, 스타라는 이름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간 고현정의 진짜 모습, 그의빈틈이다. 물론 고현정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리얼리티’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며 출연을 고사했지만 고현정의 소속사와 제작진이 밀어붙인 몰래카메라에 어쩔 수 없이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고현정은 “제작진의 만행에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프로그램은 총 4회에 걸쳐 방송된다.
12월 19일 첫 방송에서 고현정이 내준 첫 번째 ‘틈’은 배우가 아닌 엄마로서의 모습이었다. 여행 이틀째부터 촬영을 허락한 그는 이동하는 차 속에서 두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늘어놓았다. 두 아이 모두 임신 중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는 고현정은 “첫째는 아들인데,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둘째는 남자아이와 달리 안으면 품에 쏙 들어오는 게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넷 혹은 여섯까지 낳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그동안 엄마로서 밝히지 못한 속내가 있다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글쎄요” 하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이들이 어릴 때 찍어둔 영상들을 보며 그때를 추억하는데, 한 가지 슬픈 건 내 안에서의 아이들은 평생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속내라면 속내”라고 밝혔다.
방송에서 보면 고현정은 여행 중 지인들에게 자신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 보이며 과거 자신의 심리 상태와 생각들을 들려주기도 한다. 일기장에는 서른일곱 나이에 얼굴에 훈장처럼 검버섯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고, 누군가에게 ‘곁’을 준다는 게 두렵다는 고백도 들어 있다. 평소 고현정은 이런 메모 형식의 일기를 자주 쓴다고 한다.
“일기장은 아주 오래전 어느 노부부께서 선물해주신 거예요. 제가 많이 힘들었을 때 주신 건데, 일기장을 채워가면서 위로가 많이 됐어요. 그래서 아주 중요한 것, 꼭 남겨놓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만 그 노트에 일기를 써요. 그렇지 않은 것들은 여러 개의 다이어리에 아무렇게나 적어놓죠. 그런데 방송에서 난데없이 왜 일기를 보였나 몰라요(웃음).” 과거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두렵다고 했던 고현정. 현재는 사랑에 있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그동안 여러 번 났던 후배 연기자들과의 열애설에 대해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농담까지 던진다.
“사주를 봤는데 더 이상 저한테 남자가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순간 눈 호강이라도 하게 당장 유럽으로 떠나야 하나 싶었어요(웃음). 매력 있고 훌륭한 분들은 많지만 제가 그런 분들을 알아볼 만한 안목과 생기, 열정 등이 아직 살아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대중에게 좀 더 밝은 모습으로 비치길 바란다는 고현정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나로 인해 시청자들은 무조건 즐거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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