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단위 국책사업 더블체크… ‘105兆 우정본부’ 3重 감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3일 03시 00분


[정부 부패방지 대책]‘4대 백신’ 어떤 내용 담겼나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각종 국책사업과 공공기관 운영에 대해 예산 누수나 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황교안 국무총리)

정부가 12일 발표한 ‘부패 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 가운데 핵심 정책은 ‘실시간 부패 감시’다.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형 국책사업과 대규모 방위사업의 경우 비리나 예산 누수로 인한 피해액이 크지만 미미한 검증 시스템으로 인해 사업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부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부패 방지 4대 백신 추진

실시간 부패 감시와 관련해 정부는 앞으로 1조 원 이상의 국책사업 중 과거에 비리가 발생한 전례가 있거나 예산 낭비가 농후한 사업에 대해선 ‘2중 검증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해당 사업의 주무 부처에 법무부 파견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합동검증팀’을 구성해 이들이 예산 편성과 집행에 관한 사항을 1차로 검증한다. 이후 국무조정실 ‘국책사업관리팀’이 검증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출받아 사업의 타당성을 2차로 검증하는 방식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자산 운용, 철도시설공단의 부품 구매, 무역 보증 시스템에 대해선 위험이 가시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기로 했다.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국민연금 다음으로 많은 약 105조 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지만 민간 금융기관에 비해 리스크 관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우정사업본부 내 자산 관리 담당 인원은 40명에 불과하다. 1인당 2조5000억 원씩 관리하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예금 및 보험사업단 내 위험 관리 부서 확대 △외부 전문가를 부서장으로 하는 준법 감시 부서 신설 △금융위원회의 정기 및 수시 검사 등을 핵심으로 하는 ‘3중 통제 시스템 구축’ 방안을 내놓았다.

또 정부 기관과 각종 시스템의 정보 공유를 강화해 국고보조금과 국가 연구개발(R&D), 사회보험 예산의 누수를 방지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4조9000억 원에 달하는 실업급여의 부정 수급 방지를 위해 ‘신청-지급 전후-지급 이후-처벌’ 등 단계별로 맞춤형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 조사관을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지명해 실업급여를 지급한 후에도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부정 수급에 가담한 사업주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예외 없이 입건하고 사기죄를 적용해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 방산 비리 대책 등 일부 정책 재탕

전문가들은 부패 척결 대책에 대해 방향은 맞지만 방안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으다 보니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실시간 부패 감시를 위한 ‘2중 검증 시스템’ 도입을 밝히면서 우선 적용 대상 사업으로 재난안전통신망과 평창 겨울올림픽 사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이미 지난해부터 2중 검증 시스템을 적용받고 있다. 1조 원 이상 국책사업이 47개에 이르다 보니 정부가 추진 대상을 확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미 시행 중인 사업을 마치 앞으로 할 것처럼 포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국의 국방계약감사기구(DCAA)를 벤치마킹한 ‘방위사업감독관 신설’은 이날 정부가 발표한 방위사업 비리 예방 시스템 구축의 핵심 내용이다. 방위사업청장 직속으로 방위사업감독관을 신설해 주요 방위사업의 착수 단계에서부터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가 발표한 방산 비리 근절 대책 대부분은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합동부패척결추진단과 국방부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10월과 12월에 각각 발표한 대책과 동일하다. 당시 이 정책이 발표됐을 때 “방위사업감독관 역시 방사청 내부 조직인데 냉정한 평가와 감찰을 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는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사건 기록이 유실돼 조사 절차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 결정에 대한 기업들의 불복 소송으로 이어졌고 소송에 패해 과징금을 도로 기업들에 돌려주는 일도 적잖았다. 2013년 302억 원에 그쳤던 과징금 반환 규모는 지난해 3572억 원으로 급증했다.

공정위는 자진신고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적용할 경우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의 심판정 출석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 공정위의 승소율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 “옥석 가려 엄중하게 추진해야 성공”

박근혜 정부 이전에도 역대 정부는 집권 4년 차를 전후해서 부패 척결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성과는 크지 못했다. 부패 척결이 특정인에 대한 사정이나 레임덕 방지를 위한 공직 기강 잡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책의 옥석을 가려 엄중하게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정책학)는 “박근혜 정부의 경우 재정 상황이 악화돼 공공부문의 비리나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 강하다”며 “5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정부가 부패 방지 대책을 신속하게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정부#부패#4대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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