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사진)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웰다잉법이 통과되던 순간 친형을 떠올렸다. 7년 전 암 투병 끝에 작고한 정 장관의 형은 수개월 동안 연명의료를 지속하다 세상을 떠났다. 정 장관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공호흡기 등 여러 의료기기에 의지해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형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연명의료를 임의로 중단할 수 없었다. 정 장관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하고 나니, 연명의료에 직면한 환자들과 그 가족의 고통을 더 이해하게 됐다”며 “임종기에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보면서 웰다잉법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순간도 있었다. 정 장관은 “평소 해외 출장을 갈 때 호스피스 시설은 꼭 가볼 정도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장관이 되니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동료 의사들이 웰다잉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만큼은 꼭 통과돼야 한다고 많이 얘기했는데, 해결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웰다잉법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특히 세부적인 법 조항을 두고도 종교계, 법조계, 의료계 등 각 구성원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정 장관은 “죽음을 미화할 수 있는 ‘존엄사’라는 단어 대신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용어를 채택할 때 가장 고심이 됐다”며 “고비마다 70% 이상의 찬성 의견을 주신 국민, 여야를 막론하고 도와주신 정치권이 힘을 많이 주셨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웰다잉법에 대해 정 장관은 “현재로서는 최선의 결과물이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정 장관은 “여러 분이 아쉬움도 표명해 주셨지만, 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실제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대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동아일보의 ‘웰다잉법 통과 이후’ 시리즈의 문제의식에도 공감을 나타냈다. 특히 연명의료 중단이 현장에서 남용될 수 있는 여지를 시급히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법 통과 뒤 ‘자식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기에 접어든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료계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웰다잉법의 대상에 장기적 뇌사상태(식물인간)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오하이오 주, 네덜란드처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대상을 임종 6개월 전 말기환자 등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 장관은 “웰다잉법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각계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확대 논의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2018년 웰다잉법 시행 전까지 후속조치를 강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정 장관은 “연명의료 거부 확인 시스템 구축, 사전 설명의무 강화 등 동아일보가 제시한 대책들을 반영해 2018년을 준비하겠다”며 “웰다잉법 후속 태스크포스(TF)를 하루빨리 출범 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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