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해 말 사내 인사명령에 따라 새 보직을 맡았다. 이후 2주 남짓한 사이에 지난 1년간 받은 전화, 문자, 이메일보다 서너 배쯤 많은 메시지 폭탄 세례를 받았다. ‘고맙고,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보내는 것도 일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대부분 격려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통화하거나 답 문자를 보내고 나면 누가 누구였는지 뒤죽박죽이 됐다. 그런데 전화 한 통만큼은 며칠이 지나도록 생생했다.
신문 제작 마감을 코앞에 둔 시간에 생소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같으면 “미안하지만 마감시간이니 잠시 후에 다시 해 달라”며 끊어야 했다. 그런데 수화기 건너로 다급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면에 실례합니다”로 시작한 그는 자신을 한 정부부처의 대변인이라고 소개한 뒤 속사포 래퍼처럼 중간에 끊기 어려울 정도로 말을 쏟아냈다. 요지는 “자신들의 사업 성과를 꼭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마치 추임새처럼 넣어가며 이어나간 그의 얘기는 꽤나 길었다.
그의 말 속에 느껴져 오는 간절함은 이전의 어떤 전화 대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필자는 현장기자 시절 다양한 출입처에서 비슷한 전화를 받은 일이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간절함과 다급함이 진하게 배어 있던 적은 없었다. 아쉽게도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그의 얘기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그가 몸담은 부처 업무와 관련해 청와대와 야당 의원 사이에 꽤나 심각한 설전이 오갔고, 청와대의 ‘강력한 지시’가 그에게 떨어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국민의 정책 체감도가 떨어진다며 정책 홍보를 강화하라는 요구를 계속하면서 이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사회정책 부처는 지난해 말 정책 수혜 대상인 청년층의 호응도가 낮다는 지적에 아이돌 가수들이 출연하는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기획한 날로부터 최대 3주 이내에 실행하는 게 목표로 제시되자 걸림돌이 예상됐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최소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확보도, 출연진 섭외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에 실무자들은 밀어붙이기를 강행했고, 사업은 2주 뒤 중단됐다. 예상대로 출연자도 공연장도 구할 수 없어서였다.
10대와 20대를 겨냥한 홍보물을 만들어보자며 웹드라마 제작을 추진했던 부처의 이야기는 황당할 정도다. 당초 지난해 9월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외부 전문가들의 기획안은 번번이 무시당했고, 출연진도 교체되길 수차례였다. 사업을 추진했던 제작사 관계자는 “실무자가 OK를 해줘서 만들어 가면 그 위 상급자가 반대를 하고, 이를 다시 반영해 수정안을 올리면 차상급자가 반대하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작품이 최종 결재권자에게 전달된 건 12월 초.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최종 결재권자가 자신이 기대한 작품과 내용이 다르다며 실무자들을 다그친 것이다. 결국 해당 작품은 당초 계획과 달리 일반에게 선보이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해당 작품이 창고에 모셔질 가능성이 크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정부 관계자들의 보여주기식, 조급증, 관료주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정책 홍보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고 소비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로지 해당 부처 내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래선 국민들의 정책 홍보 체감도가 높아질 수 없다. 단순히 정보를 주는 수준을 넘어서 감동을 줘야만 홍보 성과가 나는 시절이다. 정책 홍보 담당자들이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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