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楊修)가 승상 조조의 문서를 관장하는 주부(主簿)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승상부의 문을 새로 세우면서 문틀을 이제 막 짰는데 조조가 직접 나와 보더니 문틀 위에 ‘활(活)’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떠났다. 양수는 그것을 보고 곧 사람을 불러 문틀을 부수게 하며 말했다. “문 가운데 ‘활’ 자가 있으니 ‘넓다(闊)’라는 뜻이 아니냐. 승상께서는 문이 넓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게다.” ◆2◆
어떤 사람이 조조에게 유락(乳酪)을 한 잔 바쳤는데 조조가 맛을 조금 보더니 뚜껑에 ‘합(合)’이라는 글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양수의 차례가 왔다. 양수는 곧 유락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승상께서 ‘사람(人)’마다 ‘한(一)’ ‘모금(口)’씩 맛보라고 하신 것인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3◆
조조가 한번은 동한 시기에 효행으로 이름 높았던 조아(曹娥)의 기념비 앞을 지날 때 양수가 그 뒤를 따랐다. 비석 뒷면에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齑臼)’라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조조가 양수에게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양수가 대답했다. “알 것 같습니다.” 조조가 말했다. “아직 답을 말하지 말라. 나도 생각을 해보겠다.”
30리를 가서야 조조가 말했다. “나도 답을 얻었노라.” 그러면서 양수에게 그가 알아낸 답을 적으라고 했다. 양수가 설명했다.
“황견(黃絹)은 색이 있는 비단을 가리키니 ‘절(絲+色=絶)’ 자로 쓸 수 있습니다. 유부(幼婦)는 여자가 어리다(女少)와 뜻이 같으며 ‘묘(女+少=妙)’ 자로 쓸 수 있지요. 외손(外孫)은 딸의 아들(女子)이니 ‘호(好)’ 자로 쓸 수 있습니다. 제구(齑臼)는 매운 양념을 가는 기구이므로 ‘사(舌+辛=辞)’ 자로 쓸 수 있고요. 그러니 ‘절묘하게 좋은 글이다(絶妙好辞)!’라는 뜻이 됩니다.”
조조 또한 따로 그 답을 적었는데 양수와 같았다. 조조는 이를 보고 “내 재주가 그대와 30리 차이가 나는구나”라고 탄식했다.
◆4◆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고 유비를 토벌하고자 했지만 공략할 수 없었고 자리를 지키고자 했지만 공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군사를 통솔하는 호군(護軍)이 조조에게 전진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하자 조조는 그저 “계륵(鷄肋)”이라고만 했다. 밖에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양수가 말했다.
“닭의 갈비라는 것은 먹자니 별로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또 아까운 것이오. 승상께서는 아마 퇴군하실 것이외다.” 양수는 군영으로 돌아가 짐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조금 뒤에 조조가 과연 퇴군 명령을 내렸다. ◆평어(評語)◆
양수는 총명함을 지나치게 드러내 조조가 그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니 화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진(晉) 왕조와 남조(南朝)의 송(宋)에서도 군주들이 신하와 시를 쓰는 재능이나 글자 풀이 재주를 다투곤 했다. 그래서 남조의 시인 포조(鮑照)의 시에는 너절한 구절이 많았고, 승건(僧虔)은 졸렬한 글을 지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 인문플러스 동양고전100선 네이버카페(http://cafe.naver.com/bookl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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