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창업에 나서는 이들은 많지만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다. 주위 상권과 노점상들의 견제를 받다 보면 창업할 때 가졌던 희망은 ‘그만둘까’ 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허가받은 장소 외의 영업은 여전히 불법이라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도 어렵다. 온종일 트럭에 앉아 장사를 하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불규칙한 수입에 “월급쟁이 시절 그리워”
“진짜로 여기서 장사할겨?”
일본식 빈대떡인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푸드트럭 ‘야끼’가 수도권의 한 지하철역 앞에 자리 잡았다. 야끼의 대표 김기만 씨(31)가 트럭 덮개를 열며 영업 준비를 하자 역 앞에서 번데기와 떡볶이 등을 팔던 노점상 주인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김 씨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중 두 명이 김 씨에게 다가왔다. 한 명이 차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여기서 장사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저 오늘 여기서 장사 할 겁니다.” 김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노점상 주인들은 차의 뒤꽁무니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외식산업을 전공한 김 씨는 졸업 이후 줄곧 식당에서 일했다. 양식당과 면 요리 전문점 등 가리지 않고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작은 식당을 갖고 싶었던 그는 푸드트럭으로 ‘실전’ 경험을 쌓으려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단단하고 차가웠다.
차량을 개조해 푸드트럭을 만드는 건 합법이지만 영업이 가능한 장소는 극히 한정돼 있다. 유원시설과 관광지, 체육시설, 도시공원, 하천, 학교, 고속도로 졸음쉼터 등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 이마저도 영업 전 관리·사업자와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 주위 점포의 눈치를 보며 겹치지 않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허가된 장소에 어렵게 자리를 잡아도 또 다른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유동인구가 많든 적든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 영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등 페스티벌에 참여하면 많은 손님을 만날 수 있지만 한 달에 두세 번에 불과한 행사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많은 푸드트럭들이 노점상과의 마찰을 감내하며 거리로 나서는 이유다.
본보가 조사한 푸드트럭 22대의 월평균 매출은 427만 원. 재료비와 유류비 등으로 매출의 약 40%를 지출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쥐는 수익은 250만 원 수준이다. 2명이 공동으로 푸드트럭을 운영하면 1인당 125만 원 남짓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등이 여는 행사에 참여하면 하루 1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도 있지만 ‘입점료’가 발목을 잡는다. 행사장에서 푸드트럭을 열려면 50만∼100만 원의 입점료를 주최측에 내야 한다.
샌드위치를 파는 A푸드트럭의 대표는 “행사에는 이름을 알린다는 마음으로 나가야지 돈을 벌기 위해 나가면 안 된다”며 “푸드트럭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며 입점료도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푸드트럭의 영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도시공원 최초의 푸드트럭으로 선정된 ‘스위트 츄러스’의 김민순 대표(32)는 다른 푸드트럭 사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영업장소 확대와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김 씨는 “푸드트럭은 일반 상점과 달리 필요할 때마다 영업장소를 바꿀 수 있는 게 장점이다”라며 “기동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규제가 풀린다면 푸드트럭 시장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푸드트럭, 맛있게 익는 꿈들
“남미로 여행 다녀올게. 석 달 정도 걸릴 거야.”
선선했던 어느 가을 동업자는 배낭을 짊어지고 한국을 떠났다. 3000만 원을 들여 1999년식 낡은 승합차를 개조하고 창업의 꿈을 키웠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1년여를 함께해 온 동업자가 전한 사실상의 ‘작별 인사’였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중심으로 영업해 온 해독주스 푸드트럭 ‘더주스박스’의 김기열 대표(34)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동업자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조심히 다녀오고.” 이동식 도서관 차량을 개조해 만든 푸드트럭에 김 씨 홀로 남았다.
가장 먼저 체력이 달렸다. 재료를 준비하고 손님을 맞고 다시 푸드트럭을 정리하는 하루가 이어질수록 몸이 지쳐갔다. 창업할 때 가졌던 열정은 어디에 숨었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힘이 된 건 한 손님이 건넨 “주스 맛있어요”라는 말이었다.
2013년까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김 씨는 아침 회의 때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왜 속 쓰리게 커피만 마셔야 하지?’ 그는 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음료를 만들기로 했다. 영등포구의 한 건물 1층을 빌려 사무실 겸 연구실로 꾸몄다. 꼬박 4개월을 투자해 시금치와 케일, 로메인, 마에 과일을 섞은 주스를 만들었다. 재료는 모두 국산을 사용했다.
“한국 사람들은 국산 농산물을 주로 쌈으로만 먹잖아요. 몸에 좋은 국산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손님들에게 알릴까 고민했죠.”
손님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더뎠다. 물을 넣지 않고 과일과 채소의 즙으로만 주스를 만들다 보니 가격이 높았다. 김 씨는 해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을 찾아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주스를 팔기로 했다. 금융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가 적격이었다. 여의도 사람들에게 해독주스를 팔러 간 그를 오히려 손님들이 ‘해독’해줬다.
“하나둘 단골이 생기고 손님들이 맛있다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인정해주니 힘이 나더라고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영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드트럭에 실린 꿈의 크기는 1t 트럭보다 크다. 푸드트럭 위 조리대에선 오늘도 전국, 더 나아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려는 꿈들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미스꼬레아’의 부부 사장도 세계 진출을 꿈꾼다. 미국과 북유럽에서 영업 중인 한국인 푸드트럭 사장들과 협약을 맺고 세계 각국에서 김치볶음밥을 팔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외국계 영화사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샌프란시스코의 영화 스튜디오에 푸드트럭을 진출시키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야끼’ ‘츄앤츄’의 대표들은 자신의 푸드트럭을 프랜차이즈화해서 더 많은 창업자들이 푸드트럭으로 돈을 버는 미래를 그린다. ‘야끼’의 김 대표는 “직영점 10개, 가맹점 100개를 내는 게 최종 꿈”이라며 “창업할 때 어려웠던 기억을 잊지 않고 가맹점주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츄앤츄’의 이준영 대표는 “10명이 푸드트럭에 뛰어들어도 70% 이상이 6개월 내에 장사를 접는다”며 “살아남은 푸드트럭들이 영업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면 예비 사업가들의 창업 성공률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일까. 푸드트럭 대표 22명 중 13명은 다시 태어나도 푸드트럭 창업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론 맨 땅에 헤딩하듯 열정을 불태워야 하지만 푸드트럭 만큼 열정만 가지고도 버틸 수 있는 사업이 드물다는 것이다. ‘손님이 푸드트럭을 외면하면 푸드트럭이 손님을 찾아가면 된다’, ‘오늘 비가 오면 맑은 날 더 일찍 문을 열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푸드트럭 대표들의 가장 큰 무기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넓어요. 서울에서 장사 안되면 인천 가면 돼요. 인천에서 손님 못 끌면 강원도 가면 되죠. 요즘엔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어디서 영업하겠다고 알리면 전국 각지의 단골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불안보다는 앞으로 만날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인터뷰를 마친 ‘멕시쿡’의 김두하 대표가 푸드트럭의 시동을 켜며 말했다. 자신감 가득한 그의 목소리는 트럭의 엔진 소리보다 힘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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