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이 ‘망국법’ 등으로 불리며 위헌 심판대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해 헌법 전문가들은 “선진국 법안처리 절차의 본질인 토론문화는 수입하지 않고 요건과 자구 등 껍데기만 베낀 결과”라고 지적했다. 국회선진화법의 모델이 된 미국과 독일 등 입법 선진국에서는 수백 년간 다수파와 소수파의 ‘토론 정치’가 생활화됐지만 거부권이나 단독처리 문화가 상존한 한국은 ‘담판 정치’에 길들여져 합의제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선진화법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해 외국의 입법 절차 사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위원회 중심주의 국가인 미국의 하원은 입법이 시급하거나 중요한 법안일 경우에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두고 있다. 하원의 과반수인 의원 218명 동의로 요청할 수 있는 ‘위원회 심사배제’ 제도는 상임위의 심사권을 배제하고 법안을 본회의로 바로 부의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회의장 직권상정과 닮았지만 의원들 스스로 활용을 절제하는 분위기다.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본회의 심의 절차를 정지하고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의사규칙정지’ 제도도 반대 의원의 심의시간을 보장하며 무리 없이 이용하고 있다.
본회의 중심주의인 영국은 ‘기요틴’이라는 시간 할당 규칙을 통해 법안이 제시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 소수당이 심의 과정을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저지하는 게 불가능하게 돼 있다. 법률안에 대해 본회의에서 세 번 논의를 거치는 독일은 연방의회 의사규칙 제62조에 ‘위원회의 신속처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 연방정부가 긴급한 것으로 표시한 법률안은 연방의회 의원 과반수로 신속 처리를 의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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