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추상의 거장 산정(山丁) 서세옥의 작품 세계는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21세기, 한국 화단이 가진 모든 가능성과 해답을 제시한다. 우리가 새삼 그의 특별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작가 서세옥(87)은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등단했다.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국 화단을 이끌어온 그에 대해 미술사가들은 “전통 화단에서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인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독자적 수묵추상의 화풍을 이루어냈다”고 평하고 있다. 그의 두 아들, 설치미술가 서도호와 건축가 서을호도 각자의 분야에서 부친의 예술혼을 잇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3월 6일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서세옥’ 특별전을 개최한다.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전위적 작품 세계
서세옥은 한학자이자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민족의식과 문인화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됐다.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 미술학부를 1회로 졸업한 그는 동양화 교수였던 근원 김용준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김용준이 추구하던 묵법 중심의 화풍은 간결한 선묘와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 처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모티프로 삼으면서도 문인화 특유의 격조를 잃지 않았다. 진채를 사용한 일본화가 선묘를 단순한 윤곽선 정도로 격하시킨 것이라면, 김용준으로부터 서세옥에게로 이어진 문인화풍의 선묘는 그 자체가 생동감 넘치는 입체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의 내면에 흐르던 고고한 선비정신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임 없이 주어진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1949년 국전 창설 직후 대학 4학년의 신분으로 국무총리상을, 1954년 3회 국전에서는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동양화부의 최고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주목받던 그는 6 · 25전쟁을 거치는 동안 친일 청산의 역사적 과제가 반공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희석되자 한동안 왜색 짙은 그림이 득세하던 국전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아물고 현대미술계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한 1950년대 후반, 파격적인 화풍의 수묵추상화를 선보이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1960년, 서세옥을 중심으로 민경갑, 남궁훈 등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들이 결성한 묵림회는 ‘전위적 청년들의 집결체’임을 주장하며 국전으로 대표되던 화단의 보수성에 항거했다. 그들의 행보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움’에 대한 시도였으며,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허무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활발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던 서양화단에 비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체돼 있던 동양화단은 그의 실험적 작품 활동으로 변화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솜방망이로 먹을 흡수해 헝겊에 두들기거나 석고를 바른 패널을 칼끝으로 긁어 작품을 완성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한정 짓지 않는 확장성을 담보해내고, 동양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시기별 대표작 1백 점을 소개하는 기증 작품 특별전으로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60여 년 전 그가 보여준 전위적 행보는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과 해답을 제시한다.
전시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전시에서는 1960년대 묵림회를 통해 추구했던 수묵추상의 작품들과, 1970~90년대 묵선과 여백의 공명만으로 인간 형상 속 기운생동을 표현하고자 했던 ‘사람들’ 시리즈 50여 점이 소개된다. 2부에서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내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작가의 시대정신과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