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특별했던, 김태원 가족 이야기

  • 여성동아
  • 입력 2016년 1월 27일 12시 33분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라면, 아내 이현주는 무대 뒤의 삶을 온전히 채워준 이다. 김태원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자폐 아들 우현이가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는 것도, 우울증을 앓던 딸 서현이가 뮤지션의 꿈을 키워온 것도 가족의 중심을 지켰던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아픔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모든 방황과 고통에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기에, 이 가족의 이야기는 앞으로 채워질 이야기가 더 많은 네버엔딩 스토리다.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 그런데 이 네 잎 클로버는 어린 시절 생장점에 상처를 입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밟혀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행운도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김태원(51) · 이현주(50) 부부는 상처를 입을수록 더욱 파릇하게 돋아나는 네 잎 클로버처럼 시련 속에서 가족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키워왔다. 그리고 이현주 씨는 그 지난한 시간들을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라는 책의 제목은 김태원이 작사, 작곡하고 2011년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이 부른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노랫말에서 따왔다. 고통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하필 왜 나에게만…’이라는 세상에 대한 원망은,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깊은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숱한 시련의 순간들을 전부 겪어내고도 그토록 밝은 희망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고난 속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이들 부부를 만났다. 누구 하나 녹록지 않은 가족들 틈에서, 이현주 씨가 아내이자 엄마로서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붙들고 지켜줘 늘 고맙다는 김태원. 이날만큼은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선 아내가 가장 빛날 수 있도록 기꺼이 받쳐주는 조력자가 돼주었다.

“제 인생을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 가슴 저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기억들을 꺼내놓는 순간들이 바로 치유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힘든 순간 한 걸음 멀어지기를 선택한 가족

‘평범하지 않은 남편과 더 평범하지 않은 두 아이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 이현주 씨가 책 머리말에 쓴 자기소개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 김태원을 만나 그가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데뷔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도, 그룹 해체로 방황하며 약물 중독에 빠져 두 차례 수감 생활을 했을 때도, 시련 끝에 재기하며 그 이름처럼 부활했을 때도 늘 그의 곁을 지켰던 이현주. 그런 그녀가 남편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아들 우현(16) 때문이었다. 우현이가 자폐 판정을 받고 남편마저 아들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2002년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새 남편에게 건넬 편지를 썼어요. 근데 차마 못 주겠더라고요. 공황에서 헤어지는 순간 뒤돌아서며 눈물을 흘렸죠.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남편은 그제야 자기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그전까지는 아이들과 잠시 여행을 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날 이후로 태원 씨는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대로 놔두면 죽을 것 같아서 2주 만에 돌아왔어요. 그즈음 ‘네버엔딩 스토리’도 만들어졌죠. 이번에 쓴 책에서 캐나다로 떠나던 날에 관한 글을 읽고 그러더라고요. ‘너와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었다’고요.”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김태원은 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버거워했고, 가족은 점점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 받았다. 그래서 다시 함께하며 힘든 것보다 헤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는 쪽을 택했다. 처음엔 이현주 씨가 다시 캐나다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부부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시아버지의 당부에 한국과 가까운 필리핀으로 보금자리를 정했다. 그리고 2005년 김태원은 서울, 나머지 가족은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김태원은 아들의 상태를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즈음 부활도 그룹 해체라는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영화 ‘말아톤’을 보면 아버지가 자폐 아들을 아주 가끔 보러 오잖아요. 저는 그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좋은 상황들이 겹치면 남자는 더 철이 없어지게 됩니다”라며 아빠로서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날을 자책하는 김태원. 하지만 당시 그가 느꼈을 고통의 크기를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아내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조차 너무 가슴 아프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라며 남편의 오랜 상처를 보듬는다.

고슴도치 사랑이란 말이 있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를 꼭 껴안는다. 순간 서로의 가시에 찔린 두 고슴도치는 그 상처가 너무 아파 떨어진다. 서로 가진 가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 가족이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고슴도치 사랑이었다.

아들의 성장을 기다려준 엄마

열여섯 살 우현이는 아직 두세 살 인생을 살고 있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자기만의 느릿한 속도로 자라는 중. 필리핀에서 일반 학교에 진학해 잘 적응해가고 있는 우현이는 요즘엔 하고 싶어하는 것들도 많이 생겼다. 수영, 드럼, 미술에 이제는 기타까지 배우러 다닌다.

우현이가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생후 8개월쯤이었다. “엄마” 하고 부를 때가 돼서도 벽을 보고 “엄마 마 마 마”라고만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는 걸 차일피일 미뤘던 건, 아이에게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올까 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두 돌이 지나서도 호전되지 않자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진단을 받기 위해 아이와 함께 병원에 입원했던 6주간은 우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됐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진정한 치료의 시작을 의미한다.

“저 스스로를 칭찬해줄 만한 게 있다면, 바로 아이를 기다려줬다는 거예요. 사실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가 빨리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꺼번에 많은 교육을 시키거든요. 저는 교육이라기보다는 훈련이라고 표현하는데, 아이에게 훈련을 너무 많이 시키다 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엄마와 같이 있는 것조차 싫어하게 돼요. 물론 저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에요. 기다린다는 건 아이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건데, 처음엔 믿음이 없어서 기다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했어요.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막 돌아다니면서도 선생님이 무슨 말 하시는지 다 알아듣는 것처럼, 우현이도 그럴 거라고요. 우현이가 말을 하지 못해도 듣고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이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현주 씨는 최근에서야 빛나는 진실 하나를 보았다. 늘 엄마 곁에서 꼭 껴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우현이는 엄마를 지키는 수호천사였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그녀가 우현이를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였던 것이다.

10여 년 만에 시작된 김태원 부자의 소통

김태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들 우현이는 나뭇잎이 아닌 나무의 속도로 천천히 자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그렇게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 같던 아들의 느리지만 행복한 변화를 발견해가고 있는 중이다. 땅속에 자리 잡은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흡수해 보이지 않게 나뭇잎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데면데면하던 부자의 소통은 2012년 아내가 여는 ‘힐링캠프’에서 4박 5일간 함께 지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현주 씨는 한국의 자폐아 가족을 필리핀으로 초대해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캠프를 열고 있다. 힐링캠프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MBC ‘위대한 유산’을 통해 새로운 부자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김태원은 방송에서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으로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함께한 추억만큼 값진 유산도 없을 것이다.

김태원은 요즘 하루하루 아들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고, 감동한다. 우현이가 이렇게 성장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 최근에는 아빠의 콘서트 무대에서 퍼커션으로 연주도 함께했다.

“그 친구를 연습실에 데리고 갔다가 ‘네버엔딩 스토리’를 연주하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필리핀에 갔을 때 퍼커션을 사달라고 하기에 사주면서 연습하라고 딱 한마디만 했어요. 근데 메트로놈 듣고 딱 치는데, 멤버들하고 협연이 되는 거예요. 너무 놀랐지. 드러머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부자는 함께하면서 서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 우현이는 아빠 옆에서 자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있어야만 그나마 옆에 누웠다. 이제는 아니다. 엄마 없이도 아빠 옆에서 잘 잔다. 그러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아빠들은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는 내 아이인지 실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가 말을 하고 반응을 보일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 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우현인 돌인 상태로 10년을 지냈다. 부자가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 그만큼 오래 걸렸다.

우울증 극복하며 뮤지션의 꿈 키우는 딸 서현

엄마의 관심이 온통 아픈 동생에게 맞춰져 있는 사이, 딸 서현(19)은 상처를 속으로 감췄다. 투정 부리는 법 없이 “엄마 안아줘” 하는 게 전부였지만 우현이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운 엄마는 “지금 힘들어. 이따 안아줄게” 하면서 서현이를 밀어내곤 했다. 그런 상처들이 가시처럼 가슴에 꾹 박혀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이를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결국 오래 감춰둔 상처가 덧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팔을 뾰족한 뭔가로 긁어대서 피투성이가 된 딸을 발견한 것이다. 우울증이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사이, 다른 한 아이가 아프고 있었다.

“그동안 엄마가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서현이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다 받아주자고 생각했어요. 서현이가 이유도 없이 화를 내면 ‘화가 났구나’ 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려주기부터 했어요. 그 말 한마디에 화난 감정이 스르르 녹아들더라고요. 엄마의 마음도 솔직히 표현했어요. ‘네가 엄마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알겠는데 나도 엄마 역할을 더 하고 싶어. 왜 그 역할을 뺏는 건데’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늘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의 감정만을 살펴야 했던 서현이. 김태원은 그렇게 일찍 철이 들어야만 했던 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생각이 깊어진 건, 그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그 아픔들을 작고 어린 몸으로 전부 견뎌낸 것.

“그 친구 우울증의 원인에는 제 무관심도 포함됐을 거예요. 동생이 아픈데 너라도 정신 차려야지, 하는 아빠의 눈빛을 봐야만 했거든요. 근데 동생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죠. 음악으로 마음을 풀어내고는 있지만 지금도 완전히 치유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앞으로 해주고 싶은 게 많아요. 멋진 아빠와 딸이 되고 싶어요,”

서현이는 아빠를 똑 닮았다. 그래서 엄마는 김태원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곤 한다. 아빠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서현이는 크리스 레오네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아빠의 콘서트를 처음 보러 간 날 어린 딸은 관중과 함께 팔을 높이 휘저으며 말했었다. “엄마, 우리 몸도 음악이지요?” 그렇게 타고난 음악적 감수성으로 최근 발표한 자신의 앨범 ‘The End’의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한 서현이. 아빠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아빠와 다른 색깔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서 성장해가고 있다.

“먼 미래에 혹시 압니까? 서현이와 우현이가 팀을 이뤄 음악을 할 수 있을는지요. 저와 아내가 없을 때 두 아이들이 음악으로 자기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그런 꿈을 꿉니다.”

길고 혹독한 방황 끝에 이유를 발견하다

아주 오랫동안 서울과 필리핀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 헤맸던 부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함께하려 무던히 애썼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할 것”을 맹세했던 부부는 20년이 지나서야 거기에 얼마나 큰 뜻이 숨어 있는지를 알게 됐다. 곁에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켰다.

김태원은 “아내란 어떤 존재입니까”라는 물음에 “저로 하여금 세상 모든 여자들을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게 만든, 그런 존재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현주 씨는“‘예쁜 여자 안 쳐다보면 내가 남자가 아니지?’라는 얘기는 해요(웃음)”라며 쑥스러운 듯 애써 말을 돌린다. 순간 ‘마지막 콘서트’(원제 ‘회상3’) 노랫말 속 주인공인 ‘그 소녀’의 앳된 얼굴이 겹쳐졌다. ‘마지막 콘서트’는 김태원이 아내 이현주 씨를 모티프로 쓴 곡이다.

이현주 씨를 가르친 건 시간이었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싸우는 건 의미가 없음을 가르쳐줬다. 우현이의 행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는데, 어느 날 보니 우현인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행복한 아이였단 걸 깨달았다. 서현이도 그랬다. 예전에는 엄마가 자기를 방치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라는 큰 울타리가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겠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들 부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모든 순간은 정말 이유가 있었느냐고.

“모든 것이 합해져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잖아요. 물론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어떤 순간도 의미 없는 것은 없더라고요. 우현이가 우리한테 선물이잖아요. 우현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런 깨달음도, 이런 순간도 없었을 거예요.”(김태원)

‘모든 이루어짐 중에 시간으로 이루어짐이 그중 더 아름답지 않은가!’ 아내의 첫 책에 바친 김태원의 추천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맞다! 지금 보이는 게 다가 아닌지 모른다. 애벌레가 훗날 아름다운 나비가 되리란 걸, 씨앗 속에 어마어마한 생명의 힘이 잠재해 있다는 걸 알 수 없듯이.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임윤정 자유기고가 | 사진 · 홍중식 기자,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장소협조 · 북티크(02-6204-4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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