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지드래곤’ 극강의 래퍼 아이돌 ZICO

  • 여성동아
  • 입력 2016년 1월 27일 12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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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4’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아이돌 그룹 ‘블락비’ 리더 지코. 최고의 인기를 얻은 아이돌 그룹 멤버인 그가 최근 랩은 물론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소화하며 첫 솔로 앨범을 19금으로 발표했다. 이런 그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이름이 있다. 바로 아이돌 그룹 ‘블락비’ 리더 지코(24 · 본명 우지호)다. 반대로 랩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이름 또한 지코다. 최근 몇 년 사이 폭풍처럼 몰아닥친 랩 열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랩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코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포스트 지드래곤’으로 불릴 만큼 그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지코는 2011년 블락비로 데뷔 후 발표한 대부분의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다. 대표곡으로 ‘HER’ ‘JACKPOT’ ‘Very Good’ 등이 있다. 무엇보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 무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유일한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의 아이돌 멤버들이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랩을 기술적으로 배우는 것과 달리 지코는 데뷔 전 힙합 신에서 활동하며 날 선 랩을 구사했다. 지난해 방송된 tvN ‘쇼미더머니4’는 앞선 시즌에서도 그랬듯이 정통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아이돌 래퍼들 간의 실력 논쟁이 있었는데, 당시 심사위원 겸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지코는 ‘아이돌은 실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그동안 색안경을 끼고 그를 보던 사람들도 그가 보여준 실력에 감탄사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도 한 공식석상에서 “메이저에서 인정받고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YG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쇼미더머니’를 보고 지코가 잘한다고 느꼈고, 관심이 있어 따로 한번 만난 적도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아이돌 아닌 래퍼라서 가능한 19금 가사

이러한 여세를 몰아 지코는 지난해 12월 7일 처음으로 솔로 미니 앨범 ‘갤러리’를 발표했다. 타이틀 곡인 ‘유레카’를 비롯해 ‘오만과 편견’ ‘웨니 위디 위키’ 등 6곡이 수록됐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가 전 곡을 작사, 작곡했다. 사실 블락비가 아닌 지코 개인 활동은 이미 2년 전에 시작했다. 2014년 11월 첫 솔로 싱글 ‘터프 쿠키’로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지난해 2월 ‘웰던’, 10월 ‘말해 yes or no’, 11월 ‘보이즈앤걸스’로 차트를 석권한 바 있다. 이 중 ‘보이즈앤걸스’는 방송 출연 없이도 SBS ‘인기가요’에서 1위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다.

미니 앨범 발매 다음 날 서울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지코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한 결과물이 탄생한 순간인 만큼 무척 상기된 모습이었다. 특히 이번 앨범은 블락비의 국내는 물론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며 하루 1시간 정도 주어진 휴식 시간을 쪼개 완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듯했다. 블락비는 2014년 6월 뉴욕과 워싱턴DC, 플로리다에서 첫 미국 공연을 개최한 이후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LA에서 두 번째 공연을 펼쳤다. 이번 앨범은 아이돌 지코가 아닌 래퍼 지코로 도전한 작업이다. 자이언티가 피처링한 타이틀 곡 ‘유레카’는 아이돌 블락비였다면 결코 도전할 수 없는 선정적인 가사들을 담고 있다. “내 바지 속의 느낌표” “아까워 발정남” 등이 그것인데 이에 대해 지코는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독특한 가사를 써보고 싶었다. 자극적이고 야한 가사가 19금 수위에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로 치면 블락비 음악들은 전체 관람가이고, 래퍼 지코의 음악은 감독판이라 할 수 있다.

섹시함을 어필한 ‘유레카’와 달리 더블 타이틀 곡 ‘오만과 편견’은 남녀가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상대를 탐색할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서로를 대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가수 수란의 보컬과 지코의 랩이 어우러져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또한 미국 LA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공을 들인 ‘VENI VIDI VICI(웨니 위디 위키· 라틴어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지코 자신이 래퍼로서 성공했음을 과시하는 음악이다. 힙합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감 넘치는 ‘스웨그’인 만큼 지코의 랩에서도 자신만만함, 당당함 혹은 거만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팬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제가 쓴 가사 중에 얄미울 정도로 잘난 척하는 내용들이 많아요(웃음). SNS나 인터뷰에서 한다면 미친놈 소리 들을 말이지만, 음악 안에서는 일정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어요. 특히 ‘쇼미더머니’ 이후 많은 분들이 저를 ‘힙하퍼’로 인정해주실 때 더 많은 기량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잘난 척을 하겠어요. 현재는 블락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인기는 영원한 게 아니잖아요.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고 싶어요(웃음).”

자기 과시와 더불어 랩의 대표적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디스(디스리스펙트,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힙합문화)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여러 랩 경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간혹 래퍼들의 인신공격성 디스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지코는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건 결코 신사다운 행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쇼 프로그램을 통해 힙합이 대중성을 얻은 건 긍정적이지만 랩에 대한 편견도 생긴 것 같아 안타까워요. 모든 래퍼가 의미 없는 디스를 하지는 않거든요. 디스를 하더라도 래퍼 자신이 좀 더 생각을 갖고 타당성 있는 비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래퍼, 노력형 뮤지션

그가 처음 랩을 하기 시작한 건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중학생 때였다. 캐나다와 중국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때 애니메이션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외로움을 음악으로 달래면서 힙합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방학 때 잠깐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당시 브랜뉴스타덤의 대표였던 조피디와 라이머에게 데모 테이프를 보냈고 바로 아이돌 연습생이 된다. 덕분에 같은 소속사 래퍼였던 버벌진트, 미스에스, 스컬 등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무대에도 설 수 있었다. 보통 힙합 신에서 활동하는 래퍼들은 아이돌에게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지코는 예외다. 물론 처음부터 래퍼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블락비로 데뷔하니까 갑자기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웃음). 래퍼 제이통 형과 친한데, 처음에는 제가 화장도 하고 랩도 본인 스타일에 맞지 않게 하니까 너무 못마땅해하더라고요. 그래도 꾸준히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서고 래퍼 형들 피처링에도 참여하니까 3년 정도 지났을 때 비로소 자신의 크루에 들어오라며 저를 인정해줬어요. 형이 제 노래 중에서 가장 세다고 평가받는 ‘날’이란 곡의 피처링도 해줬을 정도로 이제는 돈독한 사이가 됐어요.”

그렇다면 그는 래퍼와 아이돌, 언더와 오버를 넘나들며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없을까. 지코는 “가끔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특히 얼마 전 ‘쇼미더머니’에 출연할 때는 블락비 일본 콘서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한국과 일본을 네 번이나 오갔다. “다중인격”이 되는 것처럼 힘들었던 시간들이지만 여전히 그는 두 가지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주변에 보면 아이돌 제의를 받아도 래퍼를 고집하는 뚝심 있는 분들도 많아요. 아이돌이 되는 순간 실력이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잘만 한다면 얼마든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아이돌 활동은 제 나이 때 해볼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죠.”

랩은 다른 음악들과 달리 노력보다는 타고난 목소리가 상당 부분을 좌우하는데 지코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정확한 가사 전달력, 능수능란한 어휘 구사력 등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작곡 실력은 블락비 데뷔 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따로 독립해 나왔을 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학원에 다니면서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그가 구사하는 멜로디는 더욱 자유분방하다는 평이다. 랩의 생명인 가사는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좋은 밑거름이 돼준다. 또한 그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친구와 대화 중에도 가슴에 꽂히는 말이 있으면 적어놨다가 가사로 사용한다고 한다.

“직접 경험해서 느낀 것을 얼마나 진솔하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쓴 가사들을 보면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뭐에 관심이 많았는지 다 알 수 있어요. 예전에는 그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 없이 혼자 다 알아서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한계가 오더라고요. 곡 작업할 때는 일절 약속 같은 걸 잡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생각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이제는 술 모임에도 가끔 나가요(웃음).”

아이돌은 많은 팬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는 만큼 그들에게 씌워진 굴레도 있다. 언제나 바르고 착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엄격함이 그러하다. 사실 블락비는 한때 멤버들의 잘못된 언행으로 여러 번 구설에 올랐다. 대표적으로 지난 광복 70주년 관련 행사에서 멤버 피오가 ‘문제없다’라는 일본어로 쓰인 의상을 입고 나와 맹비난을 받은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그 전에도 해외 인터뷰에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들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지코는 리더로서 깨달은 바가 크다고 한다.

“신중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의 대다수가 청소년이다 보니 그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또한 음악 시장에서 아이돌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만큼 행동 하나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겠더라고요.”

스웨그는 래퍼의 숙명

반대로 대중이 생각하는 래퍼들에 대한 편견도 있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함께 라이프스타일도 그럴 것이란 예측인데, 이에 대해 지코는 자신은 예외라고 선을 그었다. “저는 굉장히 착해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는 “래퍼라고 해서 모두가 파이터 기질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랩을 잘 쓰려면 자존감이 차 있어야 한다. 힙합은 원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없으면 에너지가 달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쉼 없이 음악을 만들고 무대 위에서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여온 지코는 또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래퍼 지코로서의 활동을 성황리에 마무리한 뒤에는 서둘러 블락비 새 앨범 작업에 돌입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욕심이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고 하자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좋아하는 음식 두 가지는, 의외의 단어 ‘양대창’과 ‘막걸리’였다.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세븐시즌스 제공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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