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운 사람들이랑 가끔 얘기해요.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고 누군가에게 회사를 넘겨줘야 우리도 살고 회사도 산다고. 그땐 좀 건실한 친구한테 잘 주고 가자고. ―‘플레이’(김재훈 신기주·민음사·2015년) 》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코흘리개였을 때 외갓집에 잠시 맡겨졌었다. 낯선 한옥 아랫목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됐던 건 이모였다. 무서운 외할아버지를 피해 건넌방으로 들어오면 20대의 이모가 항상 타자기를 놓고 골똘히 뭔가를 치고 있었다.
가까운 이들 중에 크든 작든 회사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타자기 하나 두고 일하던 이모는 곧 독립을 해서 작은 사무실을 냈다. 여전히 코흘리개인 나는 이모를 따라 둘둘 말린 도안 뭉치를 들고 인쇄소를 따라다녔다. 거칠고 검은 얼굴을 한 인쇄소 아저씨들이 내가 가면 먹고 있던 막국수를 한 젓가락씩 주곤 했다.
50대로 접어든 이모는 지역에서 손에 꼽히는 출판디자인 회사 사장이 됐다. 꼬꼬마 때부터 따라다니던 나는 정보기술(IT) 업계를 출입하며 다시 20대 창업가들을 만나고 있다. 임대 사무실에 노트북 몇 개를 두고 때론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인쇄소 골목의 밤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들이 “월급날이 제일 무서워요” 하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사업 설명을 할 때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진다.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만 1조5000억 원에 육박하는 넥슨도 그런 작은 방에서 태어났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성지하이츠2 오피스텔 2009호에서 넥슨 21주년사 ‘플레이’는 시작된다. 모든 창업의 역사가 그렇듯 넥슨의 역사도 한 편의 드라마다. 쉴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지막 359페이지부터 나오는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의 소회가 백미(白眉)다.
“…그냥 게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열심히 기도하고 착하게 살고 빌고 살다 보면 크게 망하지는 않겠지, 뭐 그런.” 소박한 말이지만 그가 20대부터 지나왔을 굽이굽이들이 조용히 스며든 단상이다. 함께 꿈을 이뤄온 이들과 앉아 나중에는 ‘건실한 친구에게 잘 주고 가자’고 말하는 그의 무게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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