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 본회의장이 다시 한 번 고성과 폭언으로 얼룩졌다. 임기가 115일 남은 19대 국회는 무능(無能)과 무치(無恥)에 이어 무질서(無秩序)로 국민의 기억에 각인될 판이다.
이날 방아쇠를 당긴 건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다. 그는 의사진행 발언에서 “국회의원도 아닌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의 합의안을 뒤집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열어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과 북한인권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선거구 획정안과 묶어 일괄 처리하자고 주장하면서 본회의는 무산됐다. 그러자 합의 파기 엿새 만에 열린 본회의장에서 조 원내수석이 김 위원장의 공격수로 나선 것이다.
조 원내수석은 “바깥에 있는 진보좌파에 묶여 한발도 나가지 못하는 더민주당에 대해 한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민주노총 2중대를 자처하는 야당은 정말 국민을 위한 당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4·13총선에서 더민주당에 대한 심판이 눈에 보인다. 반성하라”고도 했다.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싸움터로 변했다. 더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어디다 대고 손가락질이야!”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대통령 한마디에 꼼짝도 못 하는 주제에” 등 온갖 폭언이 터져 나왔다. 조 원내수석의 협상 파트너인 더민주당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 전부 나가자”며 본회의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여야의 ‘막장 싸움’을 지켜보다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여야에 대한 실망감이 클수록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 걸로 보인다.
이날 본회의는 마지막까지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당론을 모으고, 더민주당도 원샷법에 대해 자유투표로 방침을 정하면서 1월 임시국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본회의는 가까스로 성사됐다. 하지만 법안 표결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 원내수석이 ‘말폭탄’을 날리면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의장으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며 “이 순간까지 국민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 참담한 심정”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종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사과해야 한다”며 정회를 요청했지만 정 의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회를 했다가 이날 본회의마저 무산되면 1월 임시국회는 ‘빈손 국회’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여야 대립은 더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맞불 의사진행 발언’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원샷법을 포함해 40개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이후 여야 충돌은 ‘2라운드’에 들어갔다. 이 원내수석은 다시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제가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은 재벌 옹호 정당이라고 하면 뭐라고 답하겠느냐. 우리는 절대 민주노총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조 원내수석의 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그러자 조 원내수석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야당 안을 갖고 협상 테이블로 오라”고 말했다. 더민주당 의원들은 “사과부터 하라”며 고성을 질렀다. 정 의장도 “의사진행 발언을 해라. 지금 의원총회가 아니지 않으냐”며 조 원내수석의 발언을 제지했다.
이어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은 “기업인들은 피눈물이 난다고 한다. 갖은 노력으로 기업을 일궈놨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고 야당 의원들에게 파견법 처리를 요구했다. 같은 당 김명연 의원도 자유발언을 신청해 같은 주장을 폈다. 이에 더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금방 말하지 않았느냐. 시간 지났다”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함께 간 함, 김 의원에게 “(중소기업인들의) 얘기를 전달하고 (국회에서) 피를 토하면서 연설을 하세요”라고 주문했다. 결국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여야가 국민에게 보낸 선물은 ‘갈등과 대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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