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하루 만에 북한이 기습적으로 개성공단 폐쇄와 한국 측 인원 전원 추방 카드를 빼들었다. 여기에 남북 간 연락 채널 전면 중단까지 내세워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남북관계는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물론이고 판문점 직통전화마저 끊겨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 경색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개성공단의 군사통제구역 선포 등 군사 조치까지 망라된 북한의 맞대응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승부수가 자신의 생존 기반인 통치자금줄 죄기임을 직감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승부수를 띄운 남북 최고 지도자의 의도는 서로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남북 간 ‘치킨 게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박 대통령 초강수에 “지면 죽는다” 맞대응
김정은으로선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배경을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 제재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밝힌 만큼 중국마저 참여하는 강력한 대북 제재가 성사되면 체제와 생존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도에 이른 강 대 강 대결 구도를 만들어 이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각이 유지되도록 노렸을 것으로 봤다. 그래야 초점이 ‘김정은 돈줄 죄기’에서 한반도 군사 긴장 완화로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김정은이 상상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초강력 제재를 이끌어 내겠다는 박근혜식 ‘벼랑 끝 전술’이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김정은이 당분간은 버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 김정은 정권의 기반이 되는 자금줄을 끊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으로서는 생존을 위협하는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 개성공단, 제2의 금강산 되나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한 해에 꼬박꼬박 통치자금으로 들어오던 1억2000만 달러짜리 달러 박스가 끊기는 대신에 개성공단 내 설비 물자 제품 등 자산 동결로 보상을 받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10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개성공단에 그동안 정부와 민간에서 1조190억 원어치 투자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사정을 잘 아는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개성공단 운영 10여 년 동안 자신들이 귀중한 군사지역을 제공해 한국에 특혜를 줬기 때문에 공단 문을 닫으면 자산을 몰수해서라도 보상을 받겠다는 심리가 강하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에 자산 동결 몰수 조치를 했다. 2000년대 중반에 중단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도 함경도 신포 금호지구의 관련 시설을 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하루 만에 동결 조치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그 내용을 한국 측 인원 추방 시점을 불과 30분 정도 남겨 놓고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은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위협 시위로 풀이된다.
○ 대남 강경파 김영철의 도발 가능성
이런 신속하고도 위협적인 북한의 조치는 최근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후임으로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김영철 정찰총국장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대남 강경파인 김영철의 스타일을 반영한 듯 대남기구 조평통의 성명은 ‘대결악녀’ ‘머저리’ ‘얼간망둥이’ 등 박 대통령에 대한 각종 저급한 막말로 가득 찼다. 박 대통령 실명 비난은 지난해 8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조평통은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은 전면 중단시킨 대가가 얼마나 혹독하고 뼈아픈 것인가를 몸서리치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으로 성명을 끝맺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런 기습적 남북관계 단절 통보가 “개성공단 중단으로 자신들이 군사적 도발을 해도 그 책임은 다 한국에 있다고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5·24조치가 취해진 뒤 북한은 남북관계 전면 단절을 선언했고 이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켰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도발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