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상원이 10일(현지 시간) 통과시킨 초강력 대북 제재 법안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들어가는 해외 돈줄을 전방위로 차단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개발과 정권 유지에 필요한 사치품 구입을 막는 데 초점을 뒀다.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등 잇단 북한의 도발을 좌시할 수 없다는 미 의회 차원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안이 통과된 미국 수도 워싱턴의 상원 의사당은 한마디로 북한 성토장 그 자체였다. 표결에 앞서 양당 의원 26명이 단상에 나와 무려 7시간 동안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을 퍼부었다. 올해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인 테드 크루즈 의원(텍사스)은 대선 주자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 북한 성토장 된 상원 의사당
포문을 연 사람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북한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며 법안 지지를 촉구했다. 그러자 법안 입안을 주도한 민주당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전 외교위원장)이 나서 “미국 정부는 너무 오래 북한 도발의 심각성을 간과했고 북한을 미치광이 지도자가 이끄는 이상한 정권쯤으로만 생각했다”며 “4차례나 핵실험을 한 걸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는 “북한이 도발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초당적인 공감대가 미 의회에 있다”며 “하원처럼 상원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러자 밥 코커 외교위원장도 “의회에 이어 행정부도 성실하게 후속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와 행정부,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장면이었다. 대북 제재에는 상원과 하원, 민주당과 공화당이 따로 없었다.
○ 대선 주자들도 동참
표결에는 전체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4명만 불참했다. 대선 경선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경선 주자들도 참여해 북한 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크루즈 의원과 마코 루비오 의원은 20일 예정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경선 유세를 잠시 중단하고 표결에 참여했다.
크루즈 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 핵 억제 정책은 실패했다”며 “해군을 강화하고, 남한에 사드를 배치해 미군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민주당 1위를 차지한 버니 샌더스 의원(버몬트)은 표결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상원의 대북 제재가 북한 핵개발을 막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북 핵실험 뒤 한 달여 만에 법안 처리
북한이 4차 핵실험(1월 6일)을 단행한 직후인 지난달 12일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이후 신속하게 상원을 통과했다. 상원 외교위는 지난달 28일 법안 상정 당일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13일 만인 10일 전체회의가 열렸다.
미 의회에는 연 8000∼1만여 건의 법안이 상정돼 불과 300여 건만 양원을 통과해 백악관으로 보내진다. 법안 하나를 처리하는 데 통상 4∼8개월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이번엔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이 법안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사치품 조달, 인권 유린, 사이버 해킹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북한과 관련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기업이나 개인도 의무적으로 제재토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두었다. 적발되면 해당 기업과 개인은 미국 내 자산 동결, 입국 거부, 미국 정부 하청 금지 등의 제재를 받는다. 필요하면 중국 기업도 해당될 이 조항은 하원 전체회의를 통과한 대북 제재 강화 법안의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보다 강도가 높다. 당시 하원 법안의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은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고려해 의무 제재가 아니라 ‘제재할 수 있다(may)’고 해 정부에 포괄적인 재량권을 줬다.
법안은 또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할지도 결정하도록 했다. 돈세탁 우려 대상 국가로 지정되면 북한 은행들은 미국의 금융체계에 접근할 수 없다.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던 방식의 금융 제재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원은 23일 이후 법안을 재심의해 의결한 뒤 행정부로 넘길 계획이다.
○ 대조적인 한국 국회
미국 상·하원이 한목소리로 신속하게 대북 제재 법안을 처리한 데 비해 한국 국회는 뒷짐을 지고 있다. 국회는 10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킨 게 전부다.
미국이 2004년에 통과시킨 북한인권법도 국회에서는 11년째 표류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11일 성명을 통해 “핵과 미사일 실험이 북한 정권의 비민주성과 인권 탄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 인권 개선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 해법이다”라며 “여야는 기존 합의대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 0